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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셰익스피어를 입다

2012-08-10 조회: 2,208

저자: 안경환 / 출판사: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출판일: 2012-03-10

서문 법, 셰익스피어를 입다
1장 셰익스피어와 법
2장 맨 먼저 할 일, 법률가 놈들을 모조리 때려죽이자!
「헨리 6세 Henry Ⅵ」(제2부)
3장 저주받을지어다, 당신네들 법!
「베니스의 상인 The Merchant of Venice」
4장 이건 법률가의 해골 같군!
「햄릿 Hamlet」
5장 자유다! 독재자는 죽었다!
「줄리어스 시저 Julius Caesar」
6장 국법을 허수아비로 만들지 말라!
「눈에는 눈 Measure for Measure」
7장 나는 국법을 어기기 싫다!
「리처드 2세 Richard Ⅱ」
8장 활기찬 젊은이에게 넘겨주고
「리어 왕 King Lear」
9장 오명(汚名)에 잃은 삶
「헛소동 Much Ado about Nothing」
10장 명예, 명예, 내 명예!
「오셀로 Othello」
11장 심장을 향해 포효하리라
「한여름 밤의 꿈 A Midsummer Night’s Dream」
12장 공정하고도 공개적인 재판?
「겨울이야기 The Winter’s Tale」
13장 칼이 우리의 법!
「리처드 3세 Richard Ⅲ」
14장 법과 문학: 입법가, 판사, 시인

서평자

김도균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독일 킬대학교 법학 박사)

서평

- 법, 인문적 교양으로 성숙해지다
- 국내에서 최초로 ‘법과 문학’이란 분야를 개척하고 많은 저서들을 집필하였으며 ‘셰익스피어와 법’에 대해 오랫동안 천착해 온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안경환 교수가 최근 『법, 셰익스피어를 입다』를 선보였다. 셰익스피어 전 작품에 대한 법률 주석서를 준비하고 있는 저자가 일종의 맛보기로 12개의 셰익스피어 희곡 텍스트를 법의 관점에서 독해하면서 그 텍스트 의미들을 영국 법제도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생생하게 되살린 역작이다. 저자의 박식한 해설 덕분에 독자들은 셰익스피어 작품의 심층적 의미를 음미할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현대 미연방대법원의 판결문 속에서 인용되고 법적 논거로서 살아 숨 쉬는 셰익스피어의 대사들을 적절하게 제시하는 저자의 노력 덕분에 셰익스피어의 현대적 의미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 ‘법률희곡’의 전형으로 유명한 「베니스의 상인」에서 저자는 네 개의 법 코드를 읽어낸다. 계약법 코드, 베니스 외국인법 코드, 유언법 코드, 혼인법 코드로 독해하는 관점도 독창적이지만 그 해설 또한 일품이다. 복수극의 원형으로 평가되는 「햄릿」 역시 저자는 법률가의 속성을 꿰뚫어 본 탁월한 법률문학으로 읽어낸다. 「햄릿」을 살인죄에 관한 종합적 교과서로 보는 관점에서 보면 햄릿의 우유부단함은 영리한 법률가의 계산된 행동, 법률가적 사고의 신중함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다. 햄릿의 모델을 법학공부에 지친 나머지 우울증에 걸린 청년 법학도일지도 모른다는 흥미로운 저자의 가설에서나 미연방대법원 판사 프랑크퍼더의 사법자제의 법철학과 햄릿을 연관 짓는 데서 독자들은 셰익스피어의 희곡이 현대 영미 법률가들에게 왜 그렇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 저자는 「줄리어스 시저」를 시민공화주의(civic republicanism) 헌법원리의 관점에서, 「리처드 2세」는 법치주의의 측면에서 분석하고 있다. 특히 「리처드 2세」에서 나오는 국왕의 사면권 대사 부분을 현대 미국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와 관련지어 해설하면서 “이건 죄악으로 사들인 사면이야. 범인 자신이 사면관이 되었으니.”라는 대사로 마무리하는 저자의 재치에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리어 왕」의 법적 의미를 고찰하면서 혼인 외 출생자의 상속을 제한하는 주법이 평등권 침해임을 선언한 1968년 미연방대법원 판결과 관련짓는 것에서 독자들은 시대를 종횡무진 넘나드는 저자의 박식함에 혀를 내두르게 될 것이다. 사랑의 집착이 낳은 광기의 비극적 결말을 다룬 「오셀로」를 저자는 법의 관점에서 풍부하게 읽어낸다. 부모의 동의 없이 자유의사에 따라 배우자를 선택한 경우의 법적 효력 문제, 명예훼손이나 정조의 법적 문제의 측면 등 「오셀로」에 나오는 각각의 대사를 법적인 관점에서 다양하게 분석하는 내용도 흥미롭지만 이아고의 ‘명예연설’이 현대 미국 사회에서 갖는 의미를 탐구하는 부분은 압권이다. 이아고의 대사가 언론의 자유와 명예훼손 사이의 충돌을 다룬 1990년 미연방대법원의 판결에서 어떻게 인용되는지, 그리고 성희롱 혐의로 피소된 미연방대법원 판사 후보자 인준청문회에서 어떻게 원용되는지를 상세하게 보여주는 부분은 책 제목에 맞게 매우 인상적이다.
- ‘징벌적 손해배상’(punitive damage) 제도가 ‘잔인하고도 비정상적인 형벌’을 금지하는 미국 수정헌법 제8조에 위반된다고 선언한 1989년 판결에서 샌드라 오코너 미연방대법원 판사가 「로미오와 줄리엣」의 한 구절을 인용하며 자신의 반대의견에 설득력과 품격을 더하고, 다수의견을 쓴 블랙먼 판사가 “위대한 시성의 권위를 빌린 반대의견”에 대해 시적인 표현으로 다시 반론을 펼치는 부분이 이 책에 소개된다. 공적 법텍스트인 판결문에서 이렇게 격조 높은 인문적 교양을 담아 논쟁할 수 있는 법률가들이 양성되는 법학교육 시스템이 부러울 뿐이다.
- 영국의 사상가 매슈 아널드는 ‘교양’이란 “지금까지 인간과 관련된 사안에서 생각되고 말해진 것들 중 최선의 것을 알게 됨으로써 총체적인 완성을 추구하는 것”으로, 이 앎을 통해 “우리의 고정관념과 습관에 신선하고 자유로운 생각의 줄기를 갖다 대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러한 교양은 사회구성원들의 취향과 언어, 상식과 윤리를 배양하는 토대가 될 터인데 안경환 교수의 저서는 이러한 의미의 ‘교양’에 더할 나위 없이 맞아 떨어지는 역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