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침팬지는 유전적으로 98% 이상 일치한다고 한다. 안타까운 점은 침팬지는 이기적이고 폭력적인 습성을 가진 동물이라는 점이다. 혹자는 이 사실을 바탕으로 인간의 이기심은 유전적으로 박혀있는 본성이라며 자신의 이기적인 행동에 위안을 삼기도 한다.

물론 인간의 이기심이 나쁘기만 한 건 아니다. ‘우리가 맛있는 저녁을 먹을 수 있는 이유는 정육점 주인이나 빵집 주인의 배려심이 아니라 그들의 이기심 때문이다.’ 경제학의 아버지 아담 스미스는 인간의 이기심을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개인의 이기심은 보이지 않는 손을 거쳐 사회적인 이익으로 돌아간다는 논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보노보 혁명, ‘이기적인 인간’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다
하지만 아무리 이기심에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해도 인간의 본성을 이기심만으로 제한하기엔 설명하기 어려운 일들이 세상엔 너무 많다. <보노보 혁명(Bonobo Revolution)>을 쓴 유병선씨는 유전적으로 침팬지보다 더 많이 일치한다는 보노보라는 유인원을 통해 인간의 본성을 정반대의 시각에서 살핀다. 보노보는 침팬지 절반도 안 되는 크기 때문에 피그미 침팬지라는 별명을 가졌지만 침팬지와 전혀 다른 습성을 가졌다. 적은 먹이도 나눠먹고, 친구의 아픔을 슬퍼하는 보노보의 본성은 배려와 협동인 셈이다. 유병선씨는 세상 구석구석에 ‘나보다 우리를, 주먹보다 악수를, 경쟁보다 협력을, 다툼보다 나눔을 사랑하는’  보노보의 본성을 발현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그 증거로 사회적 기업을 제시한다. 사회적 기업은 이익이 목적이 아닌 사회적 혜택이 목적인 기업이다. 그는 보노보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면 보노보적인 본성을 발현하는 사람들이 분명이 있으며, 그들이 벌이는 행동을 보노보 혁명이라고 추켜 세운다.

보노보들의 맏형, 무함마드 유누스
그가 ‘보노보들의 맏형’이라고 소개하는 사람이 바로 유누스다. 그는 지금부터 30년 전인 1976년, 무담보 소액대출로 방글라데시 지역 빈민들을 돕는 그라민 은행을 만들었다. 그라민 은행은 잘 자리를 잡았고, 그는 이를 바탕으로 25개의 사회적 기업들을 만들었다. 30년 넘게 한 길을 걸은 유누스를 사회적 기업가들의 맏형, 보노보들의 맏형이라고 불러도 될 법하다.

유누스는 왜 사회적 기업을 만들게 된 것일까? 그는 ‘부의 크기는 확대시키지만 그로 인해 발생하는 소수의 극심한 빈곤을 무심히 바라만 보는’ 자본주의의 문제점에 주목했다.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게 된 원인은 뭘까? 많은 사람들은 시장의 오작동을 원인으로 꼽는다. 자연스럽게 그들이 내놓는 해결책은 시장의 정상화다. 하지만 유누스는 달랐다. 그는 ‘자본주의가 인간을 오직 최대 수익에만 집중하는 일차원적인 존재로 여기기 때문’이라고 문제의 원인을 짚는다. 그렇기에 기업가나 투자자가 주변을 돌아볼 시간도 없이 최대 수익에만 집중하게 되고, 빈곤한 사람들의 삶이 악화돼도 남 일로 여기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그는 ‘인간의 다양한 본성을 발현하자’는 제안을 한다. 그래야 이익 추구가 아니라 사회적 혜택이라는 다른 목표를 추구하는 기업가들도 나올 것이고, 이를 지지하는 투자자나 소비자들도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유누스는 다양한 인간 본성 중 보노보적 본성을 강조한 것이다.

사회적 기업은 NGO 및 비영리단체나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유누스가 시장과 경쟁의 효율성까지 부정한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오해다. 그는 오히려 시장과 경쟁의 효율성을 인정하고 이를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는데 적극적으로 활용하자고 주장한다. ‘배려를 위한 경쟁’을 주문하고 있는 셈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사회적 기업은 보통의 NGO 및 비영리단체와도 거리를 둔다.

NGO 및 비영리단체는 사회적 기업과 마찬가지로 ‘사회에 특정한 혜택을 돌려주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둘 사이의 차이는 분명하다. 전자는 기부와 후원금에 의존한다. 때문에 기구를 운영해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 드는 비용을 전부 회수하지 못해도 상관이 없다. 이러면 자선단체적인 특성이 강해져 그 와중에 비효율이 발생해도 큰 문제로 여기지 않는다.

반면 사회적 기업은 투자자들에게 투자를 받는 기업이다. 사회적 혜택을 달성하는 동시에 운영비용을 회수해 투자자들에게 원금(이익의 배당금은 주지 않는다고 한다)을 돌려 줘야 한다. 결국 사회적 기업은 상품, 서비스, 고객, 시장, 비용 그리고 수익의 측면에서는 일반 기업과 마찬가지이지만 기업의 존재 목적이 이윤 극대화가 아닌 사회적 혜택 극대화에 있다고 정리할 수 있다. 

‘그라민 은행’의 성공, 변화를 이끌어 내다
이 책의 백미는 세상의 이목을 유누스에게 집중시킨 ‘유누스식 사회적 기업 성공담’이다. 그 성공담을 조금 자세히 살펴보자. 유누스는 1972년 미국에서 조교생활을 하다 방글라데시의 독립의 위해 귀국했다. 그리고 시작한 일이 치타공대경제학과 학과장이었다. 그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재미도 느꼈고, 학자로서의 꿈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74년과 75년 자연재해를 동반한 기근이 그를 학교에서 끄집어 냈다. 경제 이론만 가지고 기근을 떨칠 수 없다고 생각해 직접 가난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 것이다. 사실 그도 처음에 가난은 게으르고 일을 잘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하는 여성 일용노동자 ‘수피야 베굼’이 가난의 굴레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생각을 바꾸게 된다. 그녀는 당장 입에 풀칠을 하기 위해 고리대금업자에게 푼돈을 빌렸다가 그 대가로 모든 노동력과 그 결과물을 빼앗기고 있었다. 가난한 사람을 돕는데 드는 비용이 수십억 달러가 아니라 단돈 몇 달러라는 사실은 그에게 큰 충격이었다. 그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은행을 찾아가 빈민들에게 작은 돈을 빌려주자고 설득한다. 하지만 은행은 꿈쩍하지 않았고, 결국 자신이 직접 그런 은행을 만들기로 결심한다.

학자로서의 안락하고 보장된 삶을 버리고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는 불안정한 삶을 택한 유누스. 그의 도전을 보면서 문득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속 한 구절이 생각났다. ‘인간은 아직 알지 못하는 것을 대할 때 가장 큰 두려움을 느낀다. (중략) 이럴 때에 인간은 주의 깊고 명민해지며 자신의 감각 능력을 온전히 발휘하여 상대를 이해하려고 애쓴다. 그럼으로써 두려움을 다스리고 미처 몰랐던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중략) 아직 이름이 붙어 있지 않은 미지의 존재는 무엇이든 인류를 위한 새로운 도전을 유발할 수 있다.’  

정말 그의 도전은 큰 성공을 가져왔다. 그라민 은행에서 돈을 빌린 600만 명 이상의 빈민들 중 절반 이상은 자립에 성공했다. 또 담보도 보증도 없이 빌려준 돈도 100% 가까이 돌아왔다.

‘그라민 다농’이 보여준 창조적 자본주의
그런데 이보다 더 긍정적인 점은 외부의 변화다. 2006년 유누스의 노벨평화상 수상으로 마이크로 크레딧이라는 금융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은 방글라데시를 넘어 세계 각지로 뻗어 나가고 있다. 또 세계적인 기업들이 먼저 유누스에게 사회적 기업을 만들자는 제안을 할 정도가 됐다. 가장 성공한 사례가 2006년 유제품 부문 세계 최대기업인 프랑스 다농(Groupe Danone)과 함께 세운 그라민 다농(Grameen Danone)이다.

다농은 선진국뿐만 아니라 개발도상국의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양질의 식품을 제공하고 싶어했다. 그럼으로써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싶어했던 것이다. 다농의 임원진들이 사회적 책임을 다할 방법을 고민할 때 유누스의 활약을 알게 된 걸 보면 그들의 만남에 신의 도움이 있었다고 생각할 뻔 했다. 하지만 책을 읽다 보니, 그라민 다농이 사회적 기업으로 안정적으로 자리잡을 수 있기까지는 사회적 기업에 대한 유누스의 신념과 다농의 철저한 경영 시스템이 만든 조화의 공이 더 컸음을 알 수 있었다.

그라민 다농의 첫 제품인 영양 강화 요구르트 ‘쇽티 도이’의 생산과정을 보면 이를 살펴볼 수 있다. 먼저 다농은 최고의 제품을 만들기 위해 일반적인 제품을 만들 때와 똑같이 완벽한 자료 수집을 마쳤다. 방글라데시 사람들이 어느 정도 단 제품을 좋아하는지, 기존 제품 중 어떤 제품이 인기가 좋은지 등…… 하도 이것저것을 요구하다 보니 오히려 유누스가 귀찮아 할 정도였다. 여기에 더해 방글라데시 어린이들에게 어떤 영양소가 필요한지를 파악해 그들의 영양 상태를 개선시키는 제품을 만들기 위한 노력도 더해졌다. 제품 개발 이후 제품 컨셉트와 포장에 대한 테스트를 진행해 근육질의 사자를 캐릭터화 하는 마케팅도 진행했다. 자식 건강을 걱정하는 어머니들의 마음을 공략하는 판매 방법과, 제품의 맛과 영양소 파괴를 없애는 배달 방법까지 영업사원들에게 교육시켰다.

이에 더해 유누스는 사회적 기업의 목적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건강한 식품을 공급해 영양상태를 개선하는 것은 기본이었다. 그는 이에 더해 제품 생산과 유통 과정에 지역민들을 활용해 그들의 일자리를 만들어 지역경제까지 활성화시킬 수 있도록 주의를 기울였다. 제품의 원료인 우유도 지역 농민에게 구하고, 판매도 그라민 아줌마라 불리는 지역민들을 고용해 해결했다. 양질의 유제품이 싼 값에 판매 되면서 대량 생산의 유혹이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유누스는 유혹을 단호히 뿌리쳤다. 대신 방글라데시의 소규모 도시 곳곳에 작은 공장을 지었다. 여러 지역의 경제를 고루 활성화하자는 사회적 기업으로써의 본연을 잃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라민 은행에서부터 그라민 다농까지 30년이 넘는 세월을 미지의 세계를 밟아 나가는 삶을 살아온 유누스와 그와 함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사회적 기업을 만든 다농.   그 둘이 더해진 그라민 다농은 현재 ‘쇽티 도이’의 제품 용기를 먹을 수 있는 물질로 만드는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감자나 옥수수로 만든 컵으로 전 세계 기아들을 보다 많이 구하겠다는 꿈이다.

사회적 기업, 창조적 자본주의 그리고 +α
서평을 마무리하며 다시 아담 스미스 이야기를 꺼내야겠다. 침팬지적 본성, 이기심의 옹호자로 알려진 아담 스미스가 사실 보노보적 본성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고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담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에서 다른 사람에 대한 공감(共感)을 강조했다. 공감이란 배려의 다른 말이 아니던가? 다른 사람의 아픔과 슬픔을 마치 내 것처럼 느끼는 공감이 있어야 나보다 그들을 먼저 생각하는 배려가 생기니 말이다.

개인의 삶에서든 사회의 흐름에서든 인간은 침팬지적 본성과 보노보적 본성 사이를 오간다. 어떤 시기에는 침팬지적 본성을 굳게 발현해 성장과 경쟁에 집중한다. 그러다 또 어떤 시기에는 보노보적인 본성을 살려 나보다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한다. 두 가지 본성 모두 장단점이 있기 때문이다.

<가난 없는 세상을 위하여>를 읽으며 우리가 침팬지적 본성과 보노보적 본성 사이에서 점점 더 나은 결과를 낳는 균형점을 찾아내는 것 같아 희망적이었다. 빌 게이츠와 같은 기업가들도 유누스와 비슷한 의견을 내고 있다. “하루 1달러 미만의 생계비로 사는 전 세계 10억 빈민을 도울 수 있는 ‘창조적 자본주의’를 모색하자.” 2008년 다보스 포럼에서 빌 게이츠가 한 말이다. 기업의 목표를 이윤극대화에 둔 채 그 중 일부를 사회 혜택으로 돌려주자는 말이다. 실제 그는 그의 부인과 함께 ‘빌 앤 멜린다 게이츠 재단’을 만들어 사회를 돕는 일을 실천하고 있다.

보노보적 본성을 바탕으로 침팬지적 본성의 효율을 극대화 시키는 것. 그것이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창조적 자본주의의 근간인 동시에 오늘날 전략적 CSR을 고민하는 기업들이 기억해야 하는 원칙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