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게 군 복무를 마치고 취직한다. 그곳에는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취직한 친구가 제법 고참티를 내며 일하고 있다. 그는 불법 병역기피자다. 인생이라는 마라톤 경주에서 그 친구는 2~3년 먼저 부정 출발한 것이다. 대한민국 어느 직장에서나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불공정 풍속도다.

  돈 찍는 요술 방망이를 가진 어느 말단 세무공무원 얘기다. 현직 때는 그 마누라가 남편 월급이 쥐꼬리 같다며 궁상을 떨곤 했다. 그러나 퇴직하자 본색을 드러냈다. 서울 강남지역에 아파트가 두 채씩이나 있고 두 아들에게도 아파트를 사 주었다. 국세청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5년 반 동안 돈 먹은 것이 들통나 징계받은 세무공무원이 자그마치 188명이란다. 그러나 그게 전부일 것이라고 믿는 국민이 과연 있을까? 그리고 부정 부패가 어디 세무공무원뿐인가.

  곪았던 것들이 계속 터지고 있다. 외교부 장관이 딸의 특혜 채용 시비 끝에 딸과 함께 외교부를 떠났다. 특혜 채용은 외교부의 관행이라는 소문이 진즉부터 있었다. 초•중•고 교장이 수학여행 때 업자로부터 뒷 돈을 받거나 인사 청탁을 했다가 무더기로 망신을 당했다. 일선 경찰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는 대표적인 사정 기관인 검찰조차 일부 검사들이 뇌물에 성접대 의혹까지 받으며 특검 대상으로 전락해 버렸다.

  국군의 K21장갑차가 도강 훈련 중 물속에 가라앉았던 사고가 아직 기억에 생생하다. 이번에는 K1전차가 사격훈련 중 포신이 폭발한데 이어 변속기 결함까지 드러났다. 전 국새제작단장이 엉터리 장인 경력으로 국새를 제작 납품했다가 사기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부패한 크고 작은 권력, 냄새나는 돈 그리고 왠지 검은 커넥션을 연상시키는 불행한 사건들이다.

  국회 인사청문회를 보면서 청와대 인사검증 시스템에 사(私)가 낀 것이나 아닌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낙마한 총리나 장관 후보자들도 청문회에서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면 참 강심장들이다. 더욱 가관인 것은 청문회에서 후보자들의 도덕성을 따지며 큰소리 쳤던 국회의원들의 행태다. 1인당 월 120만 원씩 국민의 세금으로 연금을 받아 먹겠다고 오래 전에 소문 없이 의결했다. 언론도 왠지 뒷북 보도만 했다. 또 여야합의로 결정한 특별시와 광역시의 구의회 폐지도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 이유를 대며 백지화해 버렸다. 국민들은 그들의 도덕성과 공정성을 어떻게 볼까? 세상이 요지경 속 같다. 참으로 개탄스럽고 두렵기조차 하다.

  우리 사회에는 불법왕, 반칙왕, 거짓말쟁이들이 너무 많다. 불법 부동산 투기, 위장전입, 불법 병역기피, 금융실명제를 실명(失名)하게 만드는 차명계좌 굴리기, 눈 가리고 아웅식 공기업 임원 공개채용 등 예를 들자면 끝이 없다. 국방의무만 해도 그렇다. 병역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사람들 가운데 합법적인 사유로 면제된 경우가 과연 몇 %나 될까? 어떤 이유를 대든 구차한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을 만큼 불법 병역기피자들이 많다.  군에 가지 않기 위해 생이빨을 뽑지 않나, 자기 손가락을 자르지 않나. 불법 병역기피자들 때문에 합법적인 병역면제자들까지도 선의의 피해를 입을 정도다. 군에 다녀온 사람들도 내가 바보같이 생고생(?)했다는 생각마저 들게 만든다.

  공정 사회는 표현만 다를 뿐 역대 정권들이 내세운 과제였다. 군사정권도 서정쇄신이니 정의 사회 구현이니 하며 공정 사회를 외쳤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두 전직 대통령의 부정축재도 부족한지, 민주투사 출신 대통령들까지도 그 아들들이 비리 혐의로 줄줄이 구속되지 않았던가. 검찰 수사가 비리 의혹의 핵심을 파고들자 한 전직대통령은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렸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73%가 우리나라를 ‘불공정한 사회’라고 답했다. 너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공정의 잣대로 보면 ‘세상에 믿을 놈이 없다’는 불만이 나올 법도 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8.15 경축사에서 ‘공정 사회’ 실현을 천명했다. 공정 사회는 이제 이명박 정권이 실현해야 할 절체절명의 과제가 되었다. 그러나 공정 사회 구현을 위한 크고 작은 그림들을 구체적으로 그리지도 않은 채 너무 쉽게 덜컥 발표한 것이나 아닌지, 제대로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

  ‘공정 사회’ 구현은 한 정권의 과제로는 너무 벅찬 것일 수 있다. 또 끝 없는 논쟁의 시작일 수도 있다. 혁명하는 각오로 목숨 걸고 덤벼도 쉽지 않을 과업이다. 그러나 우리가 선진사회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이기도 하다.

  행정, 입법, 사법 등 정부 각 부문의 공직사회가 먼저 철저히 모범을 보여야 한다. 대기업, 언론, 시민단체, 노동조합 등 우리 사회의 현실적 파워 집단들도 모두 공정 사회 실현을 위해 변화의 대상이 돼야 한다. 이들 파워집단은 모두 윗물이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아지지 않겠는가. 공정사회 구현이 물 흐르듯이 추진되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공직사회가 가장 앞장 서서 공정 사회가 돼야 한다. 그러면 시민사회는 저절로 공정 사회가 된다.

  공정 사회란 어떤 것일까? 한마디로 법과 원칙이 누구에게나 똑 같이 작동하는 사회다. 제 아무리 큰 권력과 금력을 지녔더라도, 제 아무리 숫자의 힘을 지닌 집단이라도 법과 원칙을 벗어나면 무자비할 정도로 철저하고 엄정하게 다스려야 한다. 이명박 정부의 공정사회 실현을 위한 구체적인 로드맵과 실천력을 보고 싶다. 이명박 정부는 이제 국민의 70% 이상이 우리나라를 불공정한 사회가 아니라 공정한 사회라고 생각할 정도로 공정 사회 구현에 전력투구해야 한다. 정권의 명운을 걸어야 한다. 그래야 역사의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출세하거나 돈 번 사람을 보면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고 일했길래 저렇게 크게 성공했을까’라고 부러워하면서 그들의 ‘성취를 진정으로 높이 평가하고 존경하는 사회’, 이것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지향해야 할 『공정 사회이자 선진 사회』일 것이다. 공정한 사회는 선진사회의 필요충분 조건이다.

김강정 ( kims7007@para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