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가 환경 선구자일 수 밖에 없는 이유?
북유럽 최남단에 위치한 본토와 북대서양에 위치한 자치령 그린란드로 이뤄진 덴마크. 이 지리적 위치가 덴마크를 환경문제와 관련한 글로벌 선구자로 만들었다. 북극 근처에 위치한 그린란드가 지구 온난화로 인해 심한 몸살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덴마크의 여러 연구소들은 환경, 기후변화, 그리고 에너지라는 3가지 이슈에 초점을 맞춰 많은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하지만 정부와 연구기관뿐 아니라 덴마크 국민들 역시 기후변화라는 주제에 대해 매우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사실, 덴마크는 환경과 에너지 문제에서 오래 전부터 앞서왔다. 1970년대 오일쇼크를 겪고 난 후, 덴마크는 국가적으로 석유 대체 에너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그 해답을 풍력에서 찾았고 세계에서 가장 먼저 풍력발전에 대규모 투자를 했다. 그 결과, 덴마크의 총 소비 전력을 모두 풍력발전으로 해결할 수 있을 만큼의 설비를 갖추게 되었다. 특히 덴마크는 지형 특성상 연중 바람이 많아 일반 가정에서도 풍력발전을 통해 자체적으로 전기를 조달할 정도로 풍력발전의 대중화가 가능하다. 이제 덴마크의 풍력발전은 자국의 전력량을 충족하는 것을 넘어 이웃나라에까지 전력을 수출하면서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환경과 에너지 분야의 위기를 일찍 포착하고 먼저 해결책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한 덴마크 정부는 국내외에서 주도적으로 변화를 이끌고 있다. 우선 대외적으로 덴마크는 북유럽 에너지 협력을 주도하고 있다. 노르웨이, 핀란드, 스웨덴, 아이슬란드를 포함해 5개 나라로 이루어진 에너지 협력체는 전기 발전량 부족의 상황에서 ‘위기 공동 대처, 상호 공동 이익 관한 협동 프로젝트 추진, 에너지 설비 방법의 통일’을 과업으로 삼고 있다.
 

대내적으로는 2009년, 기후변화에 따른 기업의 전략 보고서를 발표해 기후변화와 관련한 기업을 정부 차원에서 육성한 바 있다. 또한 환경 관련 기술이 개발된 후에는 중소기업 간 기술 공유를 위한 법을 제정하기도 했다. 그 결과, 덴마크에서는 환경 기업에 대한 벤처 투자가 매년 증가하고 있다. (그림2). 이로 인해 덴마크의 자본시장이 활성화되는 부수적인 효과 또한 얻고 있다. 
 

덴마크 정부 보고서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은 기후변화와 관련된 기술 혁신 사슬이다. 이는 덴마크 기업들이 기후변화 이슈에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정부가 발벗고 나서겠다는 의미를 담고있다. (그림 3). 

일반적으로 기업은 기초 연구를 바탕으로 상품화를 이루기 위해  많은 역량과 노력을 쏟는다. 하지만 대기업이 아닌 이상 기초연구에 많은 투자를 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덴마크 정부는 정부 차원에서 혁신의 기반이 되는 기초 연구를 강화할 수 있는 프로세스를 개발했다. 대학, 연구소 등은 연구개발에 집중하고, 환경기업들은 시장성 있는 제품을 만들 수 있도록 하는데 초점을 맞춘 것이다. 이같은 기후변화와 관련된 기술 혁신 사슬 덕분에 기업 입장에서는 환경 기술 관련 제품의 개발에 들어가는 노력을 줄이고 제품의 적용과 발전에만 초점을 둘 수 있다. 다른 나라 기업에 비해 높은 경쟁력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정부 입장에서는 덴마크가 환경에 관련된 기술의 중심지로 발전한다는 비전을 현실화 할 수 있게 된다. 덴마크 정부는 이미 2억 덴마크 크로나(한화 약 400억 원)를 환경 기업의 실험적 연구 개발 프로젝트에 지출했다.

이처럼 덴마크는 앞선 환경•에너지 기술을 토대로 한 산학연 협력 시스템이 효과적으로 제 기능을 발휘하고 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성장하고 있는 덴마크의 ‘환경기업’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덴마크를 대표하는 환경기업들
이보다 더 효율 높은 펌프는 없다! 그런포스(GRUNDFOS)
그런포스는 1945년 설립돼 현재 49개국에 자회사를 보유한 다국적 기업이다. 펌프 제작 기업으로 출발했지만 이제는 상•하수도, 건축물의 배수시설, 냉난방 시설, 그리고 소방시설 등을 설계하고 설치하는 분야로 사업을 확장했다. 그런포스는 연 매출액의 5%를 연구개발에 투자하고 석, 박사학위를 가진 연구 인력  700여명을 고용하고 있다.

그런포스 제품의 특징은 높은 에너지 효율로 비용절감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이다. 그런포스의 고효율 펌프는 한국에서도 널리 사용된다. 영국 템즈 수자원 회사(Thames Water)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펌프를 구입하는 비용보다 이를 유지하는 데 드는 전기료가17배 더 많다고 한다. 이 때문에 에너지 효율이 높은 펌프를 사용할 경우 사용자의 금전적인 부담이 줄어들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그런포스 펌프는 LCD생산 공장에서 평균 36.3% 에너지를 절감하는데 기여했다. 이를 통해 연간 4억 7900만 원의 비용을 절약했고, 약 3603톤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효과까지 얻었다. 이 결과는 자동차 1109대를 거리에서 영구적으로 제거하는 효과와 같으며, 나무 129만 6060 그루를 심는 효과에 해당된다.

그런포스는 ‘그린 펌프 솔루션’이라는 혁신 제품을 만들기 위해 연구개발에 힘쓰고 있다. 한 예로 SQ 플렉스(Flex)는 사막이나 초원과 같이 고립된 자연환경에 설치할 수 있는 펌프 솔루션으로, 태양열이나 풍력에 의해서 가동된다. 유지비용이 들지 않는다는 점에서 소비자에게 훨씬 이득인 SQ 플렉스는 이미 호주의 아웃백 사막에 있는 농장들과 스페인 와이너리, 아프리카 나미비아, 그리고 남아공의 주거시설 등에 설치돼 성공을 거두고 있다.

세계 최초, 최고의 풍력발전기 제조업체, 베스타스(Vestas)
세계 풍력발전 시장은 글로벌 대기업이 장악하고 있는데, 상위 6개 기업이 71%의 시장을 점유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 중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기업이 바로 덴마크의 베스타스고,  GE나  지멘스 같은 기업은 베스타스보다 순위가 낮다. 30년간 풍력발전이라는 외길을 걸어온 베스타스는 재생에너지와 관련한 세계 최대의 연구 개발 센터를 보유하고 있다. 세계 최대 풍력터빈 제조업체로 자리잡은  베스타스는 전 세계에 4만 1000 여 대의 풍력발전기를 세웠다. 풍력발전산업으로 덴마크는 약 2만8000명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70억 달러어치의 풍력터빈을 국내외에 판매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30년 전까지만 해도 풍력발전이라는 분야는 척박하고 외진 분야였다. 지속 가능한 개발이 북유럽에서 점차 대중적인 주제로 발전하고 있는 단계이기는 했지만 풍력발전으로 돈을 번다는 것은 꿈 같은 일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덴마크 정부는 베스타스에게 직접적인 재정 지원보다 실재적인 행정 특혜를 부여했다. 당시 덴마크 농촌 지역에 건물을 짓기 위해서는 매우 까다로운 행정 절차를 거쳐야 했지만 베스타스의 풍력발전소 건설 허가는 쉽게 내려준 것이다. 또한 풍력발전으로 생산된 전력의 가격경쟁력 확보를 위한 법을 제정하기도 했다. 그 결과 베스타스는 덴마크에서 성공을 거뒀고, 세계로 발돋움 할 수 있게 되었다.

풍력발전 분야는 재생에너지라는 특성 때문에 정치적인 면이 중요하다. 풍력발전 사업권을 따내고 시설을 설치하는 데 있어 각국의 정부와 공무원들이 관련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베스타스는 함께 일하기에 좋은 회사, 그리고 유연하고 지식을 갖춘 사업 파트너라는 기업 이미지를 확립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기업이 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유럽 정부들은 유럽 정상회의에서 탄소 배출을 감소한다는 공약을 내걸었고, 덴마크 정부도 2030년까지 탄소배출량을 1990년의 절반으로 감축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러한 에너지 계획은 재생 에너지와 환경 기술 기업들의 성과와 직접적으로 연관된다. 이러한 세계적인 추세를 베스타스가 미리 알았을까? 아마도 미래를 내다보는 선견지명과 환경 기업으로서 외길을 걸어온 끈기 있는 열정이 그 성공 비결일 것이다.

먹는 제품은 안전해야 한다! 다니스코(Danisco)
'핀란드에서는 자기 전에 자일리톨 껌을 씹습니다'라는 광고의 웰빙 껌의 대명사, 자일리톨.  전 세계 자일리톨 생산량의 80%를 점유하고 있는 기업이 바로 다니스코다. 식제품 원료 제조업체인 다니스코는 자연 원료를 기반으로 하는데 과일 당분인 프락토오스(순수과당), 식이섬유 음료에 쓰이는 폴리덱스트로스(식이섬유), 그리고 무설탕 초콜릿 원료 락티톨 등을 생산한다.

다니스코는 원료 제조 업체지만 껌•사탕 등의 소비재 제조업체에 대한 기술 지원 서비스도 제공한다. 다니스코를 포함한 덴마크의 식품 기업들은 유럽 소비자들이 제품의 안정성과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민감하다는 점을 일찍부터 파악했다. 원료가 어디서 왔는지 소비자가 잘 알 수 있도록 명기하는 그들의 전략은 유럽에만 머물지 않고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다. 이에 따라 덴마크 식품 기업들의 강세는 앞으로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 주는 시사점
한국도 저탄소 녹색성장이라는 정부 정책과 함께, 기후변화에 대처하고 에너지를 절감한다는 두 과업을 해결하기 위한 대책이 쏟아지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우리는 덴마크의 정부-기업 간 협력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기후변화나 환경은 위기일 수 있다. 그러나 준비된 기업만이 위기상황에서 슬기롭게 살아남고 나아가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정부가 에너지 효율에 대한 법을 새로 제정하고 정책적으로 반영하고 있는 것은 이 변화의 시작이다.  비록 덴마크보다 출발은 늦었지만, 이들을 참고한다면 우리 기업들도 친환경 분야에서 크게 성장할 잠재력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