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한국아웃소싱기업협회 > 뉴스 > 협상의 관점에서 해부해 본 세종시 문제

세종시 문제로 온 나라가 벌써 몇 달째 시끄럽다. 앞으로도 얼마나 더 시끄러울지 모르겠다. 왜 이렇게까지 문제가 꼬이게 되었을까? 한마디로 정부가 ‘협상’의 원리에 어긋나게 이 문제에 접근했기 때문이다. 협상이란 무엇인가? 바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기술이다. 테이블에 마주 앉아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이려고 하는 것만이 협상이 아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자 하는 모든 커뮤니케이션이 다 협상이다.

정부는 지금 충청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려고 애쓰고 있다. 충청도 사람들과 협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잘 안 된다. 정부가 협상의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 것일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원리, 즉 협상의 기본 원리란 어떤 것인가? 한 마디로 ‘요구’와 ‘욕구’를 구분하는 것이다. 누가 나에게 ‘코카콜라를 한 병 달라’고 했을 때 그것은 나에 대한 그 사람의 ‘요구’이다. 그러나 그 사람이 그런 ‘요구’를 하는 것은 그에게 어떤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목을 축여 갈증을 해소하고 싶다는 ‘욕구’일 것이다. 협상의 전문 용어로 요구를 ‘포지션(position)'이라고 하고 욕구를 ’인터레스트(interest)‘라고 한다.

요구와 욕구를 구분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상대방의 요구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욕구, 즉 인터레스트에 초점을 맞추라‘는 것이다. 상대방이 나에게 콜라를 달라고 하는데 만약 내게 콜라는 없고 대신 사이다는 있다고 하자. 내가 만일 상대방의 요구에 초점을 맞춘다면 ’콜라 하나 주세요‘ 라는 요구에 대해 ’콜라가 없는데요‘라고 답하고 말 것이다. 그러면 거기서 협상은 끝나고 만다. 그러나 만일 내가 그의 ’요구‘가 아니라 ’인터레스트‘에 초점을 맞춘다면, 즉, 그의 갈증이라는 욕구에 초점을 맞춘다면 나의 대답은 ’콜라는 없어요. 그러나 사이다는 있는데요‘라고 말할 것이다. 이 때는 상대방이 사이다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상당히 높아진다. 즉, 협상이 타결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지는 것이다. 이와 같이 협상이라는 것은 포지션이 아니라 인터레스트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양쪽이 모두 만족할 수 있는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는 가능성을 대폭 높여주는 기술이다.

협상의 기술을 잘 활용한 이건희 회장 사면 건
협상의 기술은 대국민 설득에 가장 직접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 최근 이 기술을 이용해 가장 성공적으로 대국민 설득 작업을 이뤄낸 케이스가 바로 삼성그룹 이건희 전 회장의 사면 건이다. 이 전 회장의 사면 건은 참으로 예민한 문제였다. 본질 자체도 예민한 것이었지만 무엇보다 시기가 예민했다. 465억 원의 탈세, 징역 3년 형(집행유예 5년)의 가볍지 않은 형을 받은 자를 형이 확정된 지 불과 다섯 달 만에 사면해 준다는 것은 국민 정서상 결코 납득하기가 쉽지 않은 사안이었다. 즉, 국민의 마음을 움직이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삼성은 이 문제를 거뜬히(?) 해결했다. 실제 사면 문제가 공식 제기된 지 넉 달 만에 그것이 완결되었을 때의 국민 반감이나 저항을 사실상 거의 무시할 만한 수준으로 만들었다. 진보적인 몇몇 언론 외에는 사면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사설 하나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것을 당연한 것, 혹은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 들이는 분위기였다. 삼성은 어떻게 이 예민한 문제를 그렇게 스무스하게(?) 해결했을까? 사면에 대한 가치 판단은 여기서 잠시 접어두자. 협상 전문가의 입장에서 볼 때 삼성은 협상의 원리를 정말 잘 활용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했는가? 삼성은 이 문제를 접근함에 있어 무엇보다 먼저 국민의 마음 속에 있는 ‘욕구’, 즉 ‘인터레스트’를 먼저 파악했다. 그리고는 이 전 회장의 사면 문제를 이 ‘욕구’들과 연결했다. 삼성이 포착한 우리 국민의 욕구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 무엇보다 먼저 ‘잘 살고 싶은’ 욕구가 있을 것이다. 즉, 경제적 번영에 대한 욕구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는 무엇이 있을까? 국제적 위상을 높이고 싶은 욕구가 있을 것이다. 국제적 위상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스포츠이다. 스포츠에 있어 최근 우리 국민의 숙원 사업은 바로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이다. 물론 이것은 경제적인 의미도 크다.
- 그리고 시민의 자존심이라는 것이 있다. 즉, 어떤 특정인을 위해 국가나 공조직이 휘둘리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것이 바로 시민의 자존심이다.

삼성은 이 세 가지 국민적 욕구, 즉 ‘경제적 번영’과 ‘평창 동계올림픽에 맺힌 한’, 그리고 ‘시민으로서의 자존심’이라는 욕구를 정확히 파악하고 그들과 이 전 회장의 사면을 정교하게 연계시키는 전략을 택함으로써 사면에 대한 반발을 최소화 하면서 무난히 목적을 달성하였다.

삼성의 전략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전되었는지를 한 번 보자.
2009년 9월:
- 먼저 삼성의 사장 두 명이 이 사면 문제를 제기했다. 9월 5일 삼성전자의 최지성 사장이 멀리 독일 영상가전전시회에 참석하면서 ‘삼성의 경영 정상화를 위해 오너체제로의 복귀를 고민할 때가 되었다’고 완곡하게 문제제기를 했다.
- 3주 후인 9월 22일에는 같은 회사의 권오현 사장이 대만 출장 길에 오르면서 이번에는 수위를 한 단계 높여 ‘단순히 삼성 뿐 아니라 한국 경제를 위해’ 사면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 국민에게 고압적인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해외 또는 그 주위에서 차상급 인사가 부드럽게 제기했고 그 수위도 단계적이었다.

2009년 11월:
- 이를 이번에는 체육계가 받았다. 바로 국민의 한이 맺혀 있는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 건과 사면을 연결시킨 것이다. 11월 17일 강원도 김진선 지사가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이 전 회장의 사면, 복권이 필요하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했다.
- 연이어 이틀 후 평창올림픽 유치위원장인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이 김 지사의 주장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발언을 날렸다.
- 바로 그 다음 날, 손경식 대한상의회장이 ‘이 전 회장에게 국가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경제와 스포츠 양 면에서의 사면의 당위성을 옹호했다.
- 나흘 후인 11월 24일에는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이 나섰다. “기업인의 사기 측면에서 사면이 긍정적으로 검토되었으면 좋겠다‘고 발언한 것이었다.

2009년 12월:
- 12월 9일에는 강원도 출신 의원 8명이 이귀남 법무 장관을 방문하여 공식적으로 이 전 회장 사면을 검토해 줄 것을 요청하기에 이른다.
- 12월 11일에는 급기야 집권당 장광근 사무총장이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선처를 베풀어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고 거들고 나섰다.
- 같은 날 이귀남 법무장관이 국회 답변에서 ‘각계의 사면 건의를 신속히 검토하겠다’고 함으로써 사면 논의를 공식화했다. 이 장관이 ‘각계의 사면 건의’라는 용어를 쓴 것은 ‘정부가 어디까지나 국민의 요구를 수용하려고 할 뿐’이라는 인상을 주느라 노력한 흔적이다.
- 12월 17일: 대한상공회의소, 전경련, 한국경영자총협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무역협회 등 경제 5단체가 이 회장을 포함한 78명의 경제인에 대한 사면을 정식 건의하기에 이르렀다.
- 12월 29일: 법무부는 이건희 전 회장의 사면을 공식 발표했다.
- 12월 20일: 한겨레와 경향신문을 제외한 한국의 주요 신문들은 거의 예외 없이 이 전 회장의 사면을 사실상 지지하는 사설을 게재했다.

만약 이 모든 것이 ‘작전’이었다면 너무나도 완벽한 작전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완벽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협상의 기본 원리, 즉 사면을 이 전 회장 개인의 행복이 아니라 국민의 욕구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이었다. 만일 사면 문제가 이 전 회장 개인의 행복을 위한 것으로 제기되었더라면, 예를 들어, ‘이건희 전 회장이 우리나라 경제 발전에 큰 도움을 주었던 것을 고려해 이번에는 좀 관대하게 봐 주자’라는 식의 논리로 접근했다면 아마 이 건은 국민의 엄청난 반발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이 중에서 특히 ‘시민적 자존심’이라는 인터레스트에 대해 세세하게 배려했던 점을 주목해야 한다. 이 건을 삼성이나 정부가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 사회 경제 단체들이 주도했고 그것을 정부가 수용한다는 인상을 주었다는 것은 ‘시민적 자존심’을 해치지 않는 효과를 낳았고 그것이 성공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고 봐 진다.

다시 써 보는 세종시 전략 시나리오
세종시 문제와 관련, 어느 쪽이 더 좋은 것인지 가치 판단은 일단 차치하자. 문제는 정부가 세계 금융위기 사후 대책으로 출구전략을 고민하고 세계 경제지도 재편에 민첩하게 대응해야 할 바로 이 때, 세종시 문제 하나를 가지고 이렇게까지 정쟁을 거듭하는 것은 누가 보아도 잘못이라는 데 이견이 없을 것이다. 한발 양보도 없는 이 ‘막장’ 정쟁에 협상의 원리가 적용될 수 있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세종시 문제에 대해 협상의 논리에 입각해 전략을 세운다면 아마도 다음과 같은 순서로 접근이 가능할 것이다.

<1단계: 당사자 파악>
- 충청도민
- 국민 전체

<2 단계: 각 당사자의 인터레스트 파악>
- 전체 국민의 인터레스트는 무엇일까?
- ‘국가 전체의 발전’
- ‘충청도와 다른 지역에 대한 대우에 있어 상당한 정도의 공평성’ 등
- 충청도민의 인터레스트는 무엇일까?
- 충청도의 발전
- 국가 전체의 발전
- 충청도민의 자존심

이 중 ‘충청도민의 자존심’이란 인터레스트는 특별한 관심을 요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충청의 여론이다. 충청도의 여론이 수정안을 지지하지 않는 한 정부가 수정안을 강행할 명분은 약하다. 약속을 어기는 쪽은 정부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수정안을 관철시킬 수 있는 도덕적 정당성은 충청도민의 과반수 이상이 수정안을 찬성하는 것이다.

충청도민의 자존심이라는 인터레스트

그런 면에서 ‘충청도민의 자존심’이라는 인터레스트는 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충청도민은 과거에도 충청의 자존심 손상에 대해 강하게 반발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예를 들어, 1995년 지방선거, 1996년 15대 총선에서 ‘충청도 핫바지론’이 나오면서 충청도민들이 대거 자민련에 표를 몰아주어 JP가 재미를 톡톡히 본 적이 있었다.

이 세종시 문제도 가만히 살펴 보면 충청도민들이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고 충분히 느낄만하다. 충청도는 가만히 있는데 서울의 정치인들이 충청도를 ‘가지고 놀았다’고 느낄만한 것이다. 충청도가 수도 이전을 해달라고 한 적이 없었다. 2002년 노무현 당시 대통령 후보가 갑자기 충청도로 수도를 옮기겠다고 선언을 해서 좋아했더니 헌법재판소가 뜻밖에 위헌 판결을 내려 버려 도로아미타불이 되어 버렸다. 그런 상황에서 정치권이 충청도민의 기분을 달랜다고 수도 분할안을 내놓고 국회에서 법까지 통과시키는 것을 보고 간신히 상한 기분을 달래고 있던 것이 충청도민의 마음 상태였을 것이라 짐작이 된다. 한 마디로, 충청도민의 입장에서 본다면 ‘준다고 했다가 안 된다고 했다가 다시 반만 주겠다’고 한 셈이니 썩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이렇게 볼 때 세종시와 관련해서 충청도민의 가장 큰 ‘욕구’는 경제적인 손익 계산에 못지 않게 더 이상 자존심에 상처를 받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을 것이다. 즉, 더 이상 서울의 정치인들이 충청도를 가지고 그들 마음대로 주었다 뺏었다 하는 일은 다시는 없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숨은 욕구리라 짐작이 된다.

<3단계: 각 인터레스트에 대한 논리 수립 및 추진 전략>
협상 고수가 세웠을 세종시 전략
그렇다면 세종시 수정안을 추진함에 있어 정부가 가져야 할 논리와 전략은 크게 다음 3 가지가 될 것이다.
1) 수정안이 충청도의 발전에도 더 좋고,
2) 나아가 국가의 발전에도 좋다는 것을 설득력 있게 보여 준다
3) 무엇보다 그 설득의 과정이 충청도 주민의 자존심을 상하지 않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이 중 첫 번째와 두 번째 논리는 정부가 여러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만들어 내야 하고 또 잘 만들 수 있다. 문제는 세 번째이다. 과연 어떻게 충청도민의 자존심을 상하지 않고 이 문제를 제기할 수 있을 것인가? 가장 기본적인 전략 방향은 이 건을 정부 또는 정치권이 주도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또 정부가 뺏는다는 인상을 주는 것은 경제적 혜택의 다과에 관계없이 충청도민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고 그들이 받아들이기가 어려울 것이다. 바로 삼성이 이 전 회장 사면 건에 접근했던 것과 같은 접근이 아마도 유효할 것이다.

이러한 큰 골격 아래서 실행 전략을 짠다면 아마도 다음과 같이 되지 않을까?
- 이 문제를 충청도민이 먼저 제기하도록 한다. 여론 조사를 보면 충청도 내에도 현재의 세종시 원안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30-40%는 된다.
- 그리고 그 문제 제기에 대해 충청도는 물론 전국의 각계 인사들이 지지의사를 밝히게 한다. 예를 들어, 한나라당 정책위 의장으로서 세종시 법안이 통과된 데 대해 반발하여 의원직을 던진 박세일 서울대 교수 등은 큰 원군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는 지지 세력이 커지는 것을 예의 관찰한다.
- 지지 규모가 충분히 커졌다고 판단될 때, 다수 국민의 요구에 부응하는 모습으로 정부가 이 문제를 검토해 보겠다고 발표한다. 이 발표 시에는 대통령이 무엇보다 충청도민의 자존심에 상처를 줄 가능성에 대해 충분히 걱정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제일 먼저 충청도를 찾아가 충청도민은 가만히 있는데 서울의 정치권이 자꾸 왔다 갔다 하는 인상을 준 것에 대해 충분히 배려하고 사과하는 모습을 취한다. 메리트에 대한 설득은 그 다음이다.
- 그러한 정서적 공감대 위에 수정안이 충청도민에게도 좋고 국가에게도 좋은 근거와 이유를 적절한 방법으로 제시하고 국민과 충청도민을 설득한다.

세종시는 그렇다면 왜 이렇게 꼬이게 되었을까?
세종시 문제가 이렇게 꼬이게 된 것은 정부가 이 협상의 기본 원리, 즉 당사자들의 인터레스트에 대한 충분한 분석과 고려 없이 수정안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충청도민의 자존심’이라는 인터레스트에 대한 고려가 없었고 그 인터레스트가 충족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총리실 관계자들이 아무리 열심히 뛰어도 효과를 거두기가 어려운 것이다.

세종시 수정안 추진 일정을 보면 이것은 명확히 드러난다.
- 이 문제를 제일 처음 공식적으로 제기한 사람은 정운찬 총리 지명자였다. 그가 작년 9월초 총리로 지명받고 기자와의 첫 접촉에서 “세종시 원안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고 언급하면서 갑자기 논란이 시작되었다. 그 때까지 물밑에 침잠해 있던 이 이슈가 갑자기 언론의 엄청난 조명을 받게 되었다.
- 그러나 그것은 총리 지명자 개인의 의견으로 머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정 지명자의 발언이 있은 지 약 6주 후인 10월 중순 이명박 대통령이 이 문제에 대해 ‘국가 전체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봐야 한다’고 언명하면서 이 문제는 정부가 앞장서서 추진하는 소위 ‘정권적 프로젝트’로 변하고 말았다.
- 바로 몇 일 후인 10월 23일, 박근혜 전 대표가 원안 고수를 주장하며 정면으로 반기를 들고 나오면서 이 문제는 단순한 정책 문제에서 계파간 정쟁의 문제로까지 비화돼 버렸다.
- 정부는 세종시에 들어갈 대기업의 명단을 포함한 화려한 미래의 청사진을 만들어 제시하면서 총력을 다해 국민 설득 작업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정부가 한결같이 주장했던 논리는 세종시 원안을 수정하는 것이 국가적으로도 좋고 또 경제적으로도 충청도민들에게 더 좋다는 것이었다. 정부는 이 과정에서 내내 추진 동기의 진정성, 원안이 가져오는 국가적 손실, 국민과 충청도민에게 돌아가는 떡의 상대적 크기만 강조했지 충청도민의 자존심에 대한 진정이 담긴 배려와 어루만짐은 별로 보여 주지 못했다.
- 이러한 정부의 움직임에 대해 야당과 여당의 친박 계열은 ‘정치권에 대한 근본 신뢰’라는 명분을 내걸고 사생결단으로 반발해 왔다.
- 국민 여론 조사는 초반부터 지금까지 대체로 국민 전체로는 수정안을 찬성하는 쪽이 많았으나 충청도민은 한결 같이 반대론자가 더 많았다. 최근에 와서는 국민 전체로도 반대론자가 많아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 이제 이 문제는 정책 문제에서 정당과 계파간 원칙의 문제, 체면과 위신의 문제, 차기 구도를 향한 주도권 문제로 비화되었으며 도저히 해결의 실마리를 어디서 찾아야 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국민투표까지 거론되는 상황까지 가고 말았다.

세종시 문제에서 받는 교훈
정부는 아마 세종시 문제에 대해 진정성을 가지고 접근했을 것이다. 가만히 두면 욕 먹지 않고 일도 없고 책임도 없을 일을 이렇게 제기하여 사서 고생을 하는 것은 진정성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정부가 이 문제를 아마추어식으로 접근했다는 것이다. 즉, 당사자의 ‘욕구’, 즉 인터레스트에 대한 분석 없이 한 마디로 단선적으로 이해하고 즉흥적으로 제기했으며 그러면서 전국민의 여론을 몰아 이 문제를 밀어붙이고자 했다.

물론 정부가 이 과제를 추진함에 있어 ‘충청인의 자존심’이라는 인터레스트를 고려하여 처음부터 충청도의 인사들이 먼저 문제제기를 하고 정부가 수용하는 식으로 추진하였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세종시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추진됐더라면 이 문제는 타결 여부를 떠나 적어도 정쟁의 문제로까지 비화되지 않으면서 끝까지 정책의 문제로 남을 수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거의 동시에 일어난 삼성 이건희 전 회장의 사면 건과 비교해 볼 때 아직 우리 정부의 미숙함이 여실히 드러나는 케이스이다. 우리 정부가 기업에 비해 현저히 뒤쳐진다는 하나의 살아 있는 예시가 아닌가 싶다.

우리나라는 선진국에 비해 협상 교육이 현저히 뒤떨어지는 나라이다. 그나마 대기업들은 최근 협상 교육에 대해 관심이 많아지고 있지만 아직도 정부 부처에서 협상 교육을 한다는 이야기는 별로 들은 바가 없다. 정부는 무엇보다 국민의 마음을 움직여야 하는 조직이다. 대외적으로도 협상 테이블에서 외교 인사들을 설득시켜야 할 일이 많다. 그런 조직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기본 기술에 대해 관심이 별로 없다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