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주의 성공신화가 꼭 10년 만에 하락세로 돌아서면서 국순당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매출이 5년 만에 3분의 1 수준으로 추락하게 된 것이다. 수년 간 매출이 급격히 떨어지는 동안 국순당은 어떻게 대응했을까? 소비자들이 신기해 하며 즐겨 찾던 ‘전통주’의 인기가 떨어졌으니, 뛰어난 기술력을 바탕으로 다른 주류 제품을 개발해 나서야 하지 않았을까?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술을 만들겠다’는 가치로 뭉친 국순당의 선택은 달랐다. 전통주 시장이 완성되지 않았다는 데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음을 깨닫고, 전통주 시장 개척을 가능케 했던 노력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전통주 시장의 부흥’을 위한 플러스 알파를 찾아 나섰다.

‘전통주=백세주’는 국순당의 희망사항이었나? 전통주 시장의 침체로 국순당, 위기 맞아 대한주류공업협회의 통계에 따르면, 2003년 전체 6조 1000억 원의 주류 시장규모에서 전통주 시장은 3600억 원 규모였고, 그 중 백세주가 이끄는 약주시장은 1500억 원 규모였으나, 2008년 8조 6000억 원의 전체 시장 중 전통주 시장은 3000억 원, 약주 시장은 고작 740억 원 규모로 축소됐다. 이것이 어떤 의미인가? 백세주는 그야말로 ‘전통주의 부활’이란 가치와 전통주 시장의 틀을 깨는 혁신적인 노력으로 이 시장을 확대시킨 일등 공신이었다. 그러나 소비자에게 확실히 ‘전통주’로서의 백세주로는 각인되지 못했다. 실제로 ‘백세주’에 대한 소비자 인식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백세주는 ‘몸에 좋은 술’, ‘비싼 술’, ‘순한 술’로 인식될 뿐이었다. ‘전통주’ 제품 군으로 확실히 구분되지 못하다 보니 소주와 맥주 같은 메이저 주류 제품과의 경쟁에서 일종의 프리미엄 없이 경쟁해야 했고, 시간이 흐를수록 제품의 신선도가 떨어져 경쟁력을 잃고 만 것이다. 게다가 우리나라 국민이 마시는 술의 절반인 소주의 저도화는 그야말로 국순당에 직격탄을 날렸다. 2006년 최초로 20도 소주가 출시된 이후, 현재 16.8도까지 떨어져 백세주(13도)와 별 차이가 나지 않게 되었다. ‘소주가 1도 내려갈 때 마다 국순당의 매출은 200억 원씩 떨어졌다’는 분석결과가 있을 만큼, 소주가 순해지자 ‘순한 술’ 백세주는 설 자리를 점점 잃어갔다. 여기에 2000년대 중반부터 ‘고급 술’ 와인의 인기가 확산되면서 백세주는 ‘비싸고 좋은 술’의 메리트도 잃게 되었다. 국순당의 위기가 백세주의 매출 부진만이 아닌, 전통주 시장의 침체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주장에 설득력을 더해주는 결과가 또 있다. 바로 전통주 시장 경쟁사의 매출 추이이다. ‘산사춘’ 등의 인기로 국순당의 뒤를 이어 전통주 업계 2위를 유지해 온 배상면주가는 2008년, 2004년 최고 매출액의 절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202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데 그쳤다. 국순당 못지 않게 다양한 제품과 마케팅으로 노력했지만, 하락세를 반전시키지는 못했다. 전통주 업계 1, 2위인 국순당과 배상면 주가의 시장 점유율이 비슷하게 유지되었다는 점에서 국순당의 위기는 시장 자체의 축소와 위기와 그 운명을 같이한다고 할 수 있다.

플러스 알파 1. 한국인의 심장에 전통주 사랑을 키우다
우선 국순당이 시작한 것은, 국순당을 이끌어 온 ‘전통주 부활’이란 가치를 소비자들에게도 알리는 작업이었다. 우리 술의 역사와 문화, 다양한 술 종류 등은 잊혀져서는 안될 소중한 자산임을 알리는 교육부터 시작했다. 국내 최초로 전통주 강좌인 ‘신토불이 전통주 만들기’ 과정을 개최했고, 국순당 공장을 무료로 개방, 전통주 제조 과정부터 시음회까지 다양한 서비스로 소비자에게 ‘전통주’를 인식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국순당 공장 견학은 공장이 강원도 횡성에 위치해 있음에도 매달 300여 명 이상이 방문하는 등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비록 누가 알아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또 당장 돈이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전통주를 이어가겠다는 국순당의 사명감과도 같은 고집은 ‘전통주 복원 프로젝트’의 추진으로 나타났다. 과거 600여 종에 달했던 전통주를 복원해 내기 위해 최고의 기술진들이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섰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데,’ ‘물 한 바가지’ 등 애매 모호한 표현들 투성인 고문서 주조법과 씨름하느라 전통주 하나를 복원하는데 수십 여 차례의 실패는 기본, 기간도 2~3개월씩 걸리는 작업이었지만, 현재까지 ‘창포주’, ‘이화주,’ ‘동정춘’ 등 총 11종의 전통주를 복원해 냈다.

또한, 술자리에 안주가 빠지지 않는다는 점에 착안해 전통주와 궁합이 잘 맞는 음식들을 함께 파는 주점 ‘백세주 마을’도 2002년부터 운영하기 시작했다. 본사 직영으로 운영하는 것이라 현재 11개 지점에 불과하지만 백세주를 비롯, 국순당이 복원해 낸 전통주를 마실 수 있어 인기를 끌고 있으며, 재작년엔 국순당 전체 매출의 약 5%에 달하는 26억 원의 수입을 올리기도 했다.

플러스 알파 2. 소비자의 니즈를 맞춰 다양한 술 맛을 제공하다
전통주 시장의 틀을 깨는 성공 전략 플러스 알파로 국순당은 소비자의 입맛에 맞춘 다양한 술을 내놓는데 더욱 노력을 기했다. 이전까지 국순당은 좋은 술을 내놓으면 시장에서 통할 것이란 공급자의 눈으로 제품을 개발했다. 이런 관점에서 백세주의 뒤를 이을 제품으로 출시한 것이 ‘삼겹살의 메밀한잔,’ 젊은 층을 공략한 ‘별’등 이다. 그러나 소비자에게는 ‘백세주’와 크게 다르게 어필되지 못했고, 두 제품 모두 술로서의 품질이 매우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 참패라는 아픈 경험을 했다.

배중호 대표와 연구진들은 스스로 시장에 대한 ‘오만’을 깨닫고 겸손해졌다는 표현을 쓸 만큼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을 찾기 위해 눈을 돌리기 시작했고, 시장 트렌드 조사를 위해 마케팅팀의 정기 조사 외에 특별프로젝트팀을 운영했다. 특별프로젝트팀은 배 대표가 팀장이 되어 신우창 연구소 소장 외 한 명의 팀원과 함께 직접 전국으로 술을 마시러 다니며 술 시장을 몸소 체험하는 것이 주 업무였는데, 막걸리 열풍이 불기 전 막걸리의 인기를 예감하고 제품 개발을 의뢰한 것도 이 특별프로젝트팀의 공이었다. 연구소는 이들과 늘 커뮤니케이션 하며 시장 트렌드에 맞춘 제품을 개발하기도 하고, 그 외에도 매년 30여 종의 제품군을 확보해 다양한 제품 출시를 가능케 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국순당의 제품은 고가의 막걸리인 이화주(750ml, 8만 원)부터 일반 막걸리, 백세주 류, 과실주인 명작 시리즈 외 차례주까지 다양한 제품을 소비자에게 선보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막걸리 열풍을 맞게 된다.

기회는 준비된 자의 몫! 막걸리 열풍으로 기회를 잡다
2008년 말부터 불기 시작한 막걸리 열풍의 중심에 국순당이 설 수 있었던 비결은 미리 준비돼 있었기 때문이다. 특별프로젝트팀의 의뢰로 연구진은 막걸리 열풍이 불기 훨씬 이전부터 기존 막걸리의 한계를 뛰어넘는 기술 개발에 힘썼다. 유산균이 살아있는 생 막걸리는 유통기한이 일주일밖에 되지 않고, 살균 막걸리는 유통기한이 길어지긴 했지만, 톡 쏘는 탄산 맛이 없어졌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고, 2008년 발효제어억제기술을 개발해 특허를 받았다. 부패를 유발하는 외부 공기와의 접촉을 막고 효모의 활성을 조절해 생 막걸리의 유통기한을 30일로 획기적으로 늘린 것이다. 이를 통해 막걸리의 전국적 유통이 가능해졌으며, 이 기술을 이용해 만든 제품이 작년 4월 말에 출시된 ‘국순당 생 막걸리’ 이다.

한국경제신문의 소비자 조사에서 막걸리 1, 2위 제품인 장수 막걸리와 이동 생 막걸리를 제치고 1위를 할 정도로 ‘맛’을 인정받은 제품인데, 탁주업계 최초로 냉장 유통과 TV 광고를 실시해 기존 막걸리 제품과의 차별성을 부각시켰다. 그 결과, ‘국순당 생 막걸리’는 출시 100일만에 100만 병이, 250일만에 1000만 병이 판매되는 등 백세주의 인기를 앞지르는 판매를 보이고 있다. 국순당은 올 1분기에만 100억 원 어치의 막걸리 판매 수익을 올렸으니, 막걸리는 그야말로 국순당의 재도약을 이끈 효자 상품이 되었다.

우리 술을 세계에 알리고 싶은 국순당,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
지금까지 국순당이 백세주의 성공으로 전통주 시장을 개척하고, 위기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전통주 시장에 전념해 막걸리 열풍에 힘입어 재도약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막걸리 열풍은 언제 식을지 모른다. 소비자의 입맛은 쉽게 변하고 쉽게 배가 불러 안주를 덜 먹게 하는 막걸리에 대한 업소들의 불만도 무시할 수 만은 없는 실정에서 국순당은 또 다른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막걸리 시장에 진로, CJ 같은 대기업들이 진출하며 경쟁이 치열해지는 점에도 대비를 해야 하고, 국내 독보적인 품질로 리딩 브랜드로서 입지를 더욱 굳힐 필요도 있다. 무엇보다 우리 나라를 대표하는 우리 술을 만들고, 이를 널리 알리겠다는 목표는 세계 시장에서의 성공으로 달성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국순당이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은 멀다. 그러나 대기업의 막걸리 시장 진출로 치열한 경쟁이 예상됨에도 배중호 사장은 말한다. 오히려 대기업들이 전통주 시장에 들어와 시장 자체를 키우고, 우리 술의 품질도 향상시키고, 세계에 널리 알려야 한다고. 그리고 국순당 직원은 ‘대한민국 술 공무원’이란 자부심으로 위기 속에서도 묵묵히 전통주를 연구한다. 전통주를 대하는 이들의 담대한 모습에서 국순당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