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노조 허용과 노조 전임자에 대한 임금 지급 금지 문제를 둘러싼 갈등의 해법이 정치논리에 밀려 개혁 원칙이 후퇴하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사·정의 합의 과정에서 개혁 정신이 후퇴했는데, 국회 입법과정에서 더 변질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 문제는 원래 복수노조를 전면 허용하되 교섭창구는 단일화하고 노조 전임자에게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방향이 원칙이었다. 또한 그것이 노사관계와 노동조합 운영의 국제 기준과 부합한다는 공감대가 있었다.
정부도 이러한 방향으로 법을 시행하겠다고 다짐했지만 노사가 반대하자 결국 한 발 물러났다. 한국노총, 경총 그리고 노동부는 복수노조 허용 시기는 2년반을 늦추고 타임오프제를 도입해 단체교섭이나 산업안전 등 노사 공통의 업무에 대해서는 전임자가 임금을 일부라도 받을 수 있도록 합의했다. 이러한 합의안에 대해 한국노총 내부에 불만이 일자 한나라당은 한 걸음 더 물러나 단체협약으로 정하거나 사용자가 동의하는 경우 일정 범위에서 전임자가 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내놓고 있다. 이렇게 되면 통상적인 노조 활동에도 임금을 지급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뿐 아니라 민주당도 민주노총을 의식한 것인지 뒤늦게 복수노조와 전임자 임금 문제에 대한 협상을 제안하고 나섰다. 이렇게 가다가는 한국노총과 경총의 힘든 합의 성과마저도 재를 뿌리는 결과가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우리나라 노동 문제가 악화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정치권의 불합리한 정치논리의 책임도 있다. 정치권은 다수의 조용한 찬성보다는 소수의 적극적인 반대를 더 크게 의식한다. 이러한 정치적 셈법 때문에 다수의 이익을 위해서 반드시 해야 할 과제가 이익단체의 반대로 실행되지 못하는 모순이 생긴다. 지난 13년 동안 복수노조 허용과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가 유예돼 온 이유도 정치권이 기득권을 가진 목소리 큰 집단의 반발은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노동조합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일반 근로자들의 요구는 가볍게 생각한 데 있다.
정치권이 경제사회 문제를 정치논리로 해결하는 것은 불가피하지만 문제를 일반 국민의 시각에 입각해 풀기보다 특정 문제에 대한 이익단체의 찬반에 의존하는 정치적 계산법으로 푸는 것은 정치권에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 복수노조와 전임자 임금 문제만 하더라도 지난 정부 모두 유예했지만 그 당시 집권당은 정치적으로 득을 보지 못했다.
여야 모두 노사 문제에 발목이 잡힌 이유 가운데 하나는 창의적이고 통합적인 해결 방안을 찾기보다는 누구의 편을 들기 좋아하는 데 있다. 복수노조 문제 해결의 핵심은 노동조합이 난립하고 선명성 경쟁으로 노사관계가 불안해지는 것을 막는 데 있다. 전임자 임금 문제 해결도 전임자 수를 줄이되 중소 노동조합의 위축을 막는 것이 핵심이다. 그렇다면 정치권이 복수노조를 허용하면서 단체교섭이 효과적으로 작동하도록 만들고 전임자 문제를 조합 규모와 연동시키는 식의 방안을 가지고 노사를 설득했다면 노사 합의의 품질이 지금보다 좋았을 것이다.
일반인들에게 노사 문제는 그들만의 문제로 비친다는 점을 여야 정치권은 인식해야 한다. 지금과 같은 노사 문제는 노조 간부나 노동조합의 보호를 받고 급여 수준이 높은 대기업 정규직 부문에 속하는 일부 사람들의 문제일 뿐,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중소기업 비정규직 부문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딴세상 이야기처럼 들린다. 정치권은 노사단체의 이해관계에 휘둘리기보다는 일반인들이 간절히 듣고 싶어하는 고용 문제의 처방을 만드는 데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쓰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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