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개봉돼 미국에서 1억 9200만 달러, 해외에서 3억 5700만 달러를 벌어들인 <토이 스토리>. 세계를 열광시킨 아이팟과 아이폰을 만든 애플의 CEO 스티브 잡스.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하고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이들의 뒤에 공통적으로 연관되는 것이 있다. 세계 최고의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인 픽사(PIXAR)다. 픽사는 화소를 뜻하는 픽셀(Pixel)과 예술(Art)이 결합된 단어로 기술과 예술이 조화를 이뤄낸 이 회사의 특성을 그대로 반영한 이름이다.

1986년 스티브 잡스가 루카스 필름으로부터 500만 달러에 사들여 2006년 월트 디즈니에 75억 달러에 팔기까지, 20년 동안 무려 1500배나 성장한 픽사의 성공비결은 무엇일까?

책 <픽사 이야기>는 1974년 세워진 뉴욕 공과대학의 컴퓨터 그래픽스 연구소가 ‘픽사’라는 이름을 갖고 어떻게 성장해 왔는지 그 성공 스토리를 담고 있다. 픽사의 핵심인물인 에드 켓멀, 존 래스터, 스티브 잡스와 그들이 만들어낸 영화 이야기는 어떻게 픽사가 창조와 혁신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었는지, 문화산업의 지형을 바꾼 성공의 힘이 어디에 있는지 보여준다. 

그들은 패배자라 불렸지만 확고한 꿈이 있었다
픽사의 최고 경영자인 에드 켓멀은 애니메이션을 좋아했지만 그림 실력이 없었다. 디즈니의 애니메이터가 되는 게 꿈이었던 그는 자신의 형편없는 그림 실력을 컴퓨터가 대신 할 수 있지 않을까 했지만 당시의 기술로는 ‘미친 소리’라는 애기만 들을 뿐이었다.

픽사와 디즈니의 최고창작책임자인 존 래스터는 어렸을 때부터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에 빠져 살았다. 고등학교 때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일이 직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래스터는 디즈니가 세운 캘리포니아 예술학교에 진학하고 디즈니 애니메이터가 되어 꿈을 이루는 듯 보였다. 그러나 더 새로운 차원의 애니메이션을 꿈꾸던 그는 당시 침체기에 접어들었던 디즈니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다.

현재 애플의 최고 경영자인 스티브 잡스는 공동 창업자로서 함께 했던 애플컴퓨터에서 밀려나 실리콘밸리 선망의 대상에서 한 순간에 한물간 조롱거리로 전락했을 때 픽사를 인수했다.

성공이라는 단어에서 멀리 물러나 있는 듯 보였던 이들은 ‘컴퓨터 애니메이션 영화’와 ‘최초에 대한 도전’이라는 확고한 꿈이 있었다. 에드 켓멀은 알렉산더 슈어라는 성공한 기업가이자 뉴욕 공과대학의 총장 도움으로 픽사의 시초가 된 연구소를 설립했다. 그러나 대학의 연구소가 상업 영화를 만들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 순간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슈어를 뒤로하고 <스타워즈>의 제작자 조지 루카스의 손을 잡는다. 이 시기에 래스터는 자신이 디즈니에서 수십년간 쌓아온 캐릭터 애니메이팅 기술과 컴퓨터를 결합시켜 새로운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들 수 있기를 바라며 켓멀과 함께 하게 된다.

그러나 영화계의 거물이던 루카스는 애니메이션 영화의 잠재력과 성공 가능성을 알아보지 못했다. 반면 애플에서 쫓겨나 있던 잡스는 그들이 갖고 있던 소프트웨어 기술을 상품으로 만들 목적으로 1986년 루카스 필름으로부터 500만 달러라는 저렴한 가격에 픽사를 인수한다.

그러나 잡스가 픽사를 인수한 이후에도 경영은 순탄치 않았다. 잡스가 인수금의 몇 십 배를 쏟아 부었음에도 픽사는 적자 상황을 면하지 못했으며, 대량해고의 위기를 피할 수 없었다. 디즈니와 함께 <토이 스토리>를 제작하는 과정에서도 잡스는 한때 픽사를 매각하려 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초의 컴퓨터 장편 애니메이션을 창조하려는 꿈을 꾸었던 픽사는 어려움에 굴하지 않고 그 꿈을 향해 끊임없이 정진했다. 성공의 가능성을 알아챈 잡스 역시 포기하지 않았다. <토이 스토리>의 성공은 모두가 안 된다고 할 때 새로운 것을 꿈꾸고 무한히 도전했던 픽사의 노력의 결실이었다.

창의력이 시작이다, 이야기를 만들어라!
1995년 개봉된 <토이 스토리>의 놀라운 흥행은 새로운 창조산업의 등장과 픽사의 위대한 성공의 시작을 알렸다. 1999년 <벅스 라이프>와 <토이 스토리2>, 2001년 <몬스터 주식회사>, 2003년 <니모를 찾아서>에서 최근 개봉된 <토이 스토리3>까지 픽사는 애니매이션 영화 산업 분야의 역사를 새로 쓰고, 다시 써가며 끊임 없이 발전했다.

애니메이션은 아이들만 보는 것이고 장편 애니메이션을 극장에서 즐길 관객은 없을 것이라는 편견을 보기 좋게 깨버린 픽사의 영화들은 모두가 공감할 만한 살아있는 캐릭터를 창조해 냈기에 가능했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에바 일루즈(Eva Illouz)가 “현대 자본주의에서 거래되는 것은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상품에 숨겨진 감정”이라 했듯이, 영화를 보는 관객은 영화 속의 주인공이 되어 그들의 모험에 기꺼이 동행할 수 있어야 했다.

픽사는 ‘이야기’를 창조하기 위해 끊임없이 ‘이야기’를 고치고 또 고쳤다. 픽사는 이러한창조의 과정을 위해 다양한 제도와 규칙을 활용하였는데 그 한 예가 ‘브레인 트러스트(brain trust)’다. 브레인 트러스트란 픽사의 최고창작책임자인 존 래스터와 8명의 대표 감독들로 구성된 조직으로, 감독이나 제작자가 도움이 필요할 경우 이 트러스트를 소집해 지금까지 작업한 버전을 보여주고 토론을 한다. 영화작업의 진행 과정을 공유하고 생생한 토론을 거쳐 새로운 아이디어를 계속적으로 제시하게 하는 것이다. 또 일별 리뷰회의에서 감동적인 이야기를 위한 새로운 것을 배우고 영감을 얻는다.

그들이 만드는 영화는 첨단의 컴퓨터 기술을 활용하고 있지만 영화가 갖고 있는 예술적 특성을 간과하지 않았다. 래스터는 디즈니가 수십 년간 쌓아왔던 성공한 애니메이션의 노하우가 새로운 기술과 결합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즉 애니메이터가 영화의 창조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새로운 기술을 요구하고, 이렇게 발전한 새로운 기술이 애니메이터에게 다시 창조적 영감을 불어 넣어 줄 수 있도록 했다.

몇 번씩 고쳐 쓰여진 이야기, 혹은 완전히 다시 쓰여진 이야기가 우리가 본 픽사의 영화들이다. 최초에 기획된 줄거리에는 없던 이야기가 나오고, 등장인물의 캐릭터는 보다 입체적으로 발전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완전히 새로운 세계지만 일상에 토대를 둔 유머를 통해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도 공감할 수 있는 픽사만의 이야기가 완성되어 가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픽사의 이야기는 운명적으로 이미 결정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이 이야기는 예술과 기술과 사업이라는 세가지 측면의 투쟁이 한데 얽혀 있는 이야기이며, 예술과 기술과 사업 차원에서 거둔 성공이 담고 있는 불확실성과 우연성에 대한 탐구이다” 라고 말한다. 기술을 책임진 에드 켓멀, 예술 분야의 존 래스터, 그리고 경영인 스티브 잡스의 만남은 단순히 영화 산업 분야를 뛰어넘어 창조와 혁신이 꼭 필요한 덕목이 된 오늘날의 모든 기업에게 성공으로 가는 첫 발걸음을 제시하는 롤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