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는 왜 다보스의 주인공이 되었는가?
닷새간 진행된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화려한 활동이 연일 보도됐다. 이번 포럼에 참가한 30개국 정상 중 단 4개국만이 연설을 하는데 그 중 이 대통령이 제일 먼저, 그것도 아침 10시 30분이라는 황금 시간대에 연설을 했다. 그의 연설은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MB가 주최한 한국의 날 파티에는 각국 정상들이 모여 들어 한국의 미래를 축복했다. 모두 예전에 없던 이례적인 대접이다.
그렇다면 다보스 포럼이 왜 이렇게 MB를 우대하는 것일까? 그 이면의 의미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이유는 그것이 바로 세계가 지금 처해 있는 미묘하고도 예민한 전환기의 현상을 웅변적으로 표현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쇠락이 가져온 리더십의 공백을 메우는 G20
세계는 지금 심대하고도 근원적인 불안 속에 처해 있다. 그것은 바로 세계 지배구조의 근원적인 변화가 진행되고 있는 데서 오는 불안이다. 세계는 약 20년 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사실상 미국 1인 지배하에 운영되어 왔다. 말은 G7 또는 G8이었지만 사실은 미국 한 나라에 의해 리드되는 7이고 8이었다. 다행히 이들 나라들은 민주주의와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동일한 가치를 추구하는 집단이었고 따라서 그들 간에는 별로 이견들이 없었다. 그래서 미국이 리드하는 G7-8 하에 세계는 안정되었고 그리고 번영했다. 지난 20여 년간 세계 경제는 비약적으로 성장했고 그 기간 동안 세계적으로 빈곤층에서 탈출한 인구는 그 전 100년 동안보다 훨씬 더 많았다. 이렇게 안정된 세계는 오래오래 평화와 번영의 길을 갈듯이 보였다. 하지만 2008년 세계가 한창 이런 달콤한 꿈에 젖어 있을 때 금융 위기가 터짐으로써 그 꿈은 박살이 나버렸다.
금융 위기의 가장 큰 정치적 시사점은 바로 그 위기가 세계를 리드하는 나라에서 발원되었다는 것이다. 미국이 주도적으로 추구했던 금융 세계화와 자율화가 금융 위기의 주범이었다는 데 대해서는 더 이상 이견이 없다. 세계를 안정적으로 리드해야 할 책무를 지닌 종주국이 2차 대전 이후 최악의 경제 위기를 만들어낸 주범이 되어 버린 것이다. 미국의 리더십은 막대한 타격을 받았고 그런 상황에서 더 이상 G8으로는 세계를 이끌어 갈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해져 버렸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만들어진 것이 G20였다. G20는 세계 GDP의 85% 이상, 세계 무역의 80%, 세계 인구의 2/3를 차지하는 절대적 비중을 가진 집단이다. 이 정도의 무게가 실린 집단이 아니고는 미국의 영향력 약화가 가져오는 힘의 공백을 채울 수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G20라는 것은 한 마디로 세계 지배구조가 단일 지도체제에서 집단 지도체제로 변했음을 말해준다. 하지만 집단 지도체제라는 것은 잘 되면 좋은 것이지만 잘못되면 그것만큼 골치 아픈 것이 없다. 그 멤버들 간에 불화와 반목이 생기면 그것은 엄청난 불안과 혼란을 가져 오기 때문이다.
오늘 날 세계의 문제는 어느 한 나라의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을 만큼 서로 엉키고 설켜 있다. 이번 금융위기가 보여 준 가장 큰 교훈은 이제는 세계적 공조 없이 국가간 중요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작년 4월 런던에서 G20의 첫 회의가 열렸을 때 사람들은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 보았다. 20개나 되는 나라가 모인 집단, 선진국과 중진국이 다 들어가 있는 집단, 가치관이 제각기 다른 나라들이 들어가 있는 집단, 이해관계가 다른 각 나라들이 들어가 있는 그 집단이 과연 어떤 의미 있는 합의에 도달할 수 있을까 커다란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 그들은 대규모 재정 투입을 통해 경제 위기 극복이라는 큰 방향에 대해 합의를 하는 등 의미 있는 결과를 도출해 냈다. 그것은 막 취임한 오바마 대통령의 겸손하고 경청하는 자세, 활발한 중재 활동 등에도 일부 원인이 있었지만 근본적으로는 세계를 뒤덮고 있던 경제 위기가 낳은 중압감이 너무 컸었던 데 더 큰 원인이 있었다.
G2의 시대는 근원적으로 불안을 배태하는 시대
2009년 가을이 되어 경제 위기가 진정 되어가면서 각국은 생각지도 않았던 새로운 세상의 도래를 목격하게 되었다. 그것은 G20가 더 이상은 단순한 G20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그것이 실제로는 G2라는 것이었다. 선진국의 심각한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예상과 달리 중국이 계속 꿋꿋하게 성장을 지속하는 것을 보며 세계는 경악했다. 그러면서 중국이 2조 달러가 넘는 외환보유고와 8000억 달러가 넘는 미 국채를 보유하고 있는, 이 지구상에서 가장 막강한 현실적 무기를 가진 경제 파워라는 것을 발견하면서 중국의 동의 없는 세계적 합의가 이제는 무의미하다는 현실을 느끼기 시작했다. 세계는 중국은 물론 인도, 한국,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적 활력을 보면서 아시아가 더 이상 서구에 의존해 사는 종속적 존재가 아니라 도리어 세계를 리드하는 역동성의 발원지임을 발견했고 그래서 ‘아시아의 시대’라는 새 시대의 출현을 선언하기까지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세계는 G2의 시대, 또는 ‘아시아의 시대’가 근원적으로 불안을 배태하는 시대임을 느끼고 있다. 20개국이나 되는 멤버를 가진 집단이 화목하게 조화를 이루어 가는 것은 근본적으로 힘든 것이다. 더구나 이 20개국의 집단에는 중국이라는 또 하나의 변수가 있다. 한 마디로 중국은 서구와는 다른 가치관을 가진 나라이다. 민주주의를 실천하지 않는 나라이고 아직까지도 세계 평화와 공존이라는 대원칙에 대한 동의를 공개적으로 선언해 본 적이 없는 나라이다. 이런 나라가 실질적으로 세계 투표권의 반을 가진 나라가 되어 버린 신(新)지배구조에 대해 세계는 마음 한 구석으로 불안해 하고 있다.
중국의 리더십에 대해 커져가는 불안
세계의 이런 불안은 작년 12월에 열렸던 세계기후 정상회의를 거치면서 증폭됐다. 200개국의 정상들이 모인 이 역사적 회의는 한 마디로 중국의 ‘똥고집(?)’ 때문에 아무런 실질적인 결실을 맺지 못한 채 사실상 실패로 끝나 버렸다. 선진국들이 회의 초반 무려 1000억 달러를 온난화 방지를 위해 출연하겠다고 선언했을 때 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기대에 부풀었었다. 그러나 중국이 그 1000억 달러의 사용처에 대한 제도적 모니터링에 반대하고 급기야는 구체적 연도별 목표 설정에까지 반대 입장을 고수하면서 그 역사적 회의는 실패로 끝나 버리고 만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중국에게 세계 평화와 공존공영에 대한 헌신의 의사가 없다는 증거는 도처에 나타나 있다. 중국이 고집스럽게 고정환율제를 유지하면서 무역전선에 부당한 우위를 유지하는 것에 대해 전 세계가 몇 년 째 목소리를 높여 비난하고 있지만 중국에게는 마이동풍이다. 전 세계가 걱정하고 있는 이란의 핵무장에 대해 강대국 중 유독 중국만 나몰라라 하고 있다. 이번 구글과의 싸움에서도 과연 중국이 글로벌 스탠다드를 추구하는 나라인가에 대해 세계는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
한 마디로 전 세계는 G20라는 집단지도체제가 가지는 본질적인 불안정성은 물론, 그리고 그것이 중국이라는 아직 신뢰할 수 없는 리더에 대해 리드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대해 불안해 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가 한국을 우대할 수 밖에 없는 이유
바로 이 점에서 세계는 한국을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세계가 잘 되기 위해서는 G20가 잘 돼야 한다. UN이나 IMF, 세계은행 같은 기구들이 상당 부분 실질적인 효율성을 상실한 상황에서 G20의 효율성은 절대적인 중요성을 가진다. G20가 잘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모두가 화합하고 한 방향으로 갈 수 있어야 하는데 미국이 그것을 앞으로 계속 잘 엮어 낼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그렇다고 자기 코가 석자나 빠진 유럽이 그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더욱 불확실하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는 누군가가 미국을 도와서 중국을 견제하고 도리어 리드하며 이들 전체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중재적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게 되기를 절실히 바라고 있다. 이러한 세계의 욕구를 가장 잘 만족시킬 나라로 세계가 지목한 나라, 그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G20의 구성을 자세히 살펴 보면 왜 세계가 한국을 지목했는지, 한국이 정말 얼마나 특이한 존재인지를 알 수 있다. G20에는 소위 잘 사는 선진국 외에 인도네시아, 터키, 사우디, 멕시코, 남아프리카 공화국, 아르헨티나, 인도, 러시아, 중국 등 온갖 나라들이 다 들어가 있다. 이들은 발전 정도, 지향하는 가치, 이해관계가 모두 다른 나라들이다. 사우디나 중국 같이 정치적 후진국도 있고 인도네시아, 사우디, 터키 같이 종교적 배경이 전혀 다른 나라도 있다. 그들 간에는 동양과 서양의 경쟁의식도 작용할 것이고 부자에 대한 반감도 작용할 것이다. 사람이 모인 곳이니 만큼 편가르기, 줄세우기가 없을 수 없다. 또 서양에 대한 반감도 있을 수 있으며 중국과 미국의 헤게모니 의식도 있을 것이다. 이런 다양하고 복잡한 구성 하에서 이들은 의견을 하나로 모아가야 한다. 우선 어떤 방식으로 의사를 결정할 지도 불분명하다. 과반수보다는 최대한 합의(컨센서스)를 통해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바람직한데 이런 다양성 속에서 그 합의를 이루어 나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울 것인가 하는 것은 가히 짐작이 간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 합의를 이루는 촉매 역할을 하기에 가장 적합한 나라로 세계는 한국을 지목하고 있는 것이다.
자세히 보면 G20에는 한국 같은 나라가 없다. 한국은 2차대전 이후 선진국 문턱에 온 사실상 최초의 나라이다. 한국은 중진국에 속해 있으면서 선진국적인 경제 구조와 규모를 가지고 있다. 정치적으로도 한국은 최단시일 내에 정치 미숙아에서 건강하게 작동하는 민주주의 국가로 성장한 나라이다. 전쟁과 분단의 아픔을 한껏 겪었으면서도 다른 나라를 침략한 과거의 부채가 없는 나라이다. 경제 성장, 정치적 성장의 노하우를 다 가지고 있고 다른 나라에 그 경험을 전수할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한국은 문화적 강대국으로서 아시아 전역에 강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은 중진국의 입장을 대변하여 선진국을 설득할 수도, 반대의 입장에서 후진국을 설득할 수도 있다. 이렇듯 한국이 보유한 자산과 입장은 G20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볼 때 한국은 미국의 역할을 보완하여 미국과 다른 입장에서 중국을 설득하고 중진국들을 끌어 모아 공동번영의 궤도로 이끌고 유지할 수 있는 역할을 해낼 수 있는 나라이다.
바로 이 때문에 G20가 유례없이 중진국에 불과한 한국을 공식적인 세계의 리더 반열에 올리는데 동의한 것이다. G20를 이끄는 의장국이란 자리는 한국이 세계로부터 받고 있는 존경을 상징한다.
세계로부터 의장국으로서 일단 합격점 받은 한국
그러나 한국을 G20의 의장국으로 지명해 놓고도 세계는 여전히 불안했었다. 과연 중진국에 불과한 한국이 세계 최강 20개국을 리드하여 의장국으로서의 역할을 잘 해 낼 수 있을 것인가? 한국이 세계 전체를 조망하는 시야와 철학을 가지고 어젠다를 제대로 설정해서 그것을 회원국들에게 설득력 있게 제시할 능력이 있는 나라인가? 세계는 한국에 대해 그런 의혹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MB에게 이번 다보스에서 가장 먼저 연설을 할 기회를 주고 한국의 지도자적 자질을 테스트해 보고 싶은 생각이 강했던 것이다.
결과는 어땠는가? MB의 연설, 그리고 그 이후의 여러 행보에 대한 외신의 보도들을 종합해 보면 일단 한국은 합격점을 받은 것 같다. MB가 시도한 서울 G20의 어젠다 설정은 세계적 공감을 무난히 얻은 것 같다.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협력 이행, ▷선진국-개도국간 격차 해소와 글로벌 금융 안전망 구축, ▷G20 비회원국과 민간에 대한 외연 확대 등의 어젠다는 현재 세계가 당면하고 있는 현실을 타개해 나가는 데 있어 충분히 의미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금 세계는 한국에 거는 기대가 크다. 한국은 역사상 가장 큰 의미를 지닌 하나의 사명에 직면하고 있다. 한국이 G20 의장국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느냐 아니냐 하는 것은 한국의 이미지와 세계적 위치라는 면에서뿐 아니라 세계가 앞으로 새 지배구조 하에서 평화와 공존의 역사를 창출해 나갈 수 있느냐 하는 면에서도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11월 G20회의를 위한 주도 면밀한 준비가 필요한 것은 물론이다. 나아가 한국은 G20 회의의 무난한 개최를 넘어서 세계사에 있어 한국의 자리매김에 대한 비전을 만들기 시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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