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구미사업장은 최근 소위 ‘실버세대’로 불리는 노령 근로자 60여 명을 고용했다. 이들은 1954년생 이전 출생자들이다. 삼성전자는 업무능력이 우수한 근무자는 근로계약을 연장해 나이든 사람들의 일자리를 지속적으로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기업이 구조조정이나 임금삭감을 감행할 때, 가장 먼저 도마에 오르는 이들은 노령 인력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글로벌 기업들부터 고령인력, 은퇴인력에게 눈을 돌리고 있다. 왜 그럴까?
인력부족 시대가 온다
미국에서는 향후 10년 간 500만~1000만 명의 인력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는 2차 대전 이후 1946년부터 1964년 사이 출생한 베이비붐 세대 8000만 명의 은퇴가 그 원인이다. 캐나다에서는 향후 20년간 100만 명의 인력이 부족할 것으로 보인다. 유럽 연합도 예외는 아니다. 인력감소를 충당하기 위해서 매년 수백 만 명의 이민자를 받아들이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아시아 국가는 어떠한가? 일본은 출산율이 급속도로 줄어들어, 2020년이 되면 은퇴자는 두 명인데 신규채용은 한 사람만 할 수 있을 것이라 내다보고 있다. 한국도 이러한 세계적인 추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6.25 직후인 1953년부터 1964년 사이에 출생한 한국 베이비붐 세대의 맏형들이 곧 은퇴를 바라보고 있다. 게다가 OECD 최저 출산율 국가라서 향후 10~20년 안에 인력문제를 겪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나이 든 사람은 일을 못해?!
대부분의 경영자들이 ‘나이 많은 직원들은 금새 지치거나 일의 성과가 좋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미국 워싱턴 소재 공공정책 연구소인 어번 인스티튜트(Urban Institute)의 연구결과는 아니라고 말한다. 20~65세 인력의 직무성과를 비교한 결과, 나이와 직무성과에는 큰 연관관계가 없다는 것을 밝혀냈다. 인간의 평균수명이 80세를 웃도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제 50~60대는 그들의 지적 능력이나 신체능력이 젊은이들과 비교해서 뒤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은 오랜 경험과 연륜으로 단련되어 그들만의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젊은 직원들은 감시와 통제가 필요한 반면, 이들은 관리라는 것이 크게 필요치 않다. 왜 그럴까? 이들에게 ‘일’ 자체가 큰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일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그들은 자존감을 느끼는 것이다. 일에 대한 만족도 역시 높아 젊은 직원들과 비교해 이직률이 현저히 낮은 편이다.
오히려 실버인력이 더 우수했다
미국에서 반즈 앤 노블(Barnes & Noble) 다음으로 가장 큰 오프라인 서점인 보더스(Borders Group)를 보자. 직원들의 잦은 인력교체로 고심하던 보더스는 안정적인 인력수급을 목적으로, 직원의 연령, 만족도, 이직률 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는 흥미로웠다.
50대 직원과 30대 이하 직원을 비교해 보니, 50대 직원의 이직률이 30대에 비해 6분의 1 수준으로 훨씬 낮았다. 뿐만 아니라 업무효율과 직원 만족도가 훨씬 높았다. 이에 보더스는 정책적으로 나이든 직원을 늘리는 인력 정책을 세웠다. 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대부분 30대 이하 직원이었고, 50세 이상의 인력은 6%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2008년에는 50세 이상의 직원이 전체의 18%, 5400여 명에 이르고 있다. 이 회사는 이 비율을 2010년까지 25% 수준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45세 이상 독자들이 미국에서 판매되는 서적 절반 이상을 구매한다는 점을 고려, 보더스는 장노년층 직원들이 소비자의 시각에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서비스 마인드가 뛰어나다는 장점에 주목했다. 더불어 50세 이상의 직원은 모집하기 쉽고, 직무교육이 용이하다. 보더스가 50대 인력을 채용한 이후, 이직률이 업계비교 절반 수준이며 점점 내려가는 추세에 있다.
에이비스 렌터카(Avis Rent-a-Car)의 경우도 은퇴자를 적극 고용하고 있다. 파트타임 셔틀버스 운전기사들을 조사해 본 결과, 은퇴자들이 교통법규 위반, 교통 사고 건수가 적고 차 관리도 잘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은 적극적으로 은퇴자를 고용하기 시작했다. 에이비스는 아침 일찍 쇼핑몰에서 정보지를 나눠주는 방식으로 은퇴자들을 모집했다. 은퇴자 고용 결과 에이비스가 고민하고 있었던 교통법규 위반이나 교통사고로 인한 비용이 줄어 드는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국제적인 화학 기업 몬산토(Monsanto)는 몬산토에서 은퇴한 직원을 파트타임 직원으로 고용하고 있다. 몬산토에는 ‘퇴직자 자원관리 부서(Monsanto’s Retiree Resource Corps)’가 있다. 이 부서에서는 은퇴 직원들 중 파트타임으로 일 할 수 있는 이들의 명단을 관리한다. 은퇴자들의 노후 삶의 질을 고려해 일년 중 약 1000시간 정도를 일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몬산토가 부서를 만들면서까지 은퇴자를 관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비용절감과 더불어 몬산토의 문화와 기술적 지식을 어린 직원들에게 전수하려는 의도다. 고도의 현장 지식과 경험을 가진 이들을 멘토로 세우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은퇴자들이 가지고 있는 경험치를 아래 세대로 전수시키고 있는 것이다.
국내기업도 눈길
우리나라에서도 퇴직자들을 재고용해 높은 성과를 내는 기업이 있다. 울산에 위치한 고려제강이 대표적인 예다. 이 회사 공장 근로자는 44명, 평균 연령 58.7세이다. 모두가 55세에 정년 퇴직했다가 다시 돌아온 직원들이다. 이들은 주 5~6일, 3조 3교대로 근무한다. 한창 때 급여의 절반 수준을 받고 일하지만, 직원들은 만족한다. 업무 강도도 낮고 기업 측에서 고령자가 불편 없이 일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공장 안에 의무실을 두고 건강검진을 실시한다든가 직원들이 무거운 제품을 쉽게 운반할 수 있도록 천장엔 크레인 선을 설치해 놓는다든가 하는 것들이다. 기업의 배려에 직원은 성과로 보답하고 있다. 납기와 품질은 강조하지 않아도 직원들이 알아서 챙기고, 최고의 품질을 만들어 내려는 열의로 공장이 가득하다.
기업뿐 아니라 공공기관들도 은퇴자의 가치를 재평가하고 이들을 기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울산시다. 올해부터 울산지역 석유화학업체에서 근무했던 공장장 등 은퇴 과학기술인력을 활용하기 위해 'NCN(New Challenge NETWORK)'을 조직했다. 산업현장에서 장기간 근무하며 쌓은 노하우를 후진들에게 전수해 지역경제 발전을 꾀한다는 목적에서다. 이곳에 회원인 전직 공장장은 모두 41명. 이 중 13명은 현재 대학강단, 11명은 산업체, 4명은 공공기관, 1명은 언론사에서 지역사회 봉사차원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들을 적극 기용하기 위해, 울산발전연구원 인적자원개발지원센터에 전담관리센터를 설치하고 과학기술인력 데이터베이스와 활용시스템을 구축하기로 했다. 또 울산지역 각 기관과 기업은 물론 전국 주요 관련기관을 연계하는 네트워크도 구축할 예정이다
실버인력 잘 활용하려면
실버인력을 잘 활용하는 기업의 특징은 기업의 운영진들이 은퇴자와 나이든 직원들의 가치를 이해하고 그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데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경영층의 관심과 업무 유연성이다.
‘나이든 직원들에게 무슨 교육이 필요해’라고 반문하는가? 나이든 직원일수록 그들의 고용주가 ‘내 경력개발에 관심을 갖고 있는가’를 중요시 여긴다. 기업에 중요한 존재이며 기여를 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기업 내에서 이들을 존중하는 문화가 구축되는 것이 중요하다. 더불어 삶과 일의 균형(Work-life balance)를 맞출 수 있도록, 파트타임, 재택근무 등을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이 제공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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