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GM: 의대생으로서 사회운동, 감옥투옥의 이력이 있고 의료계 내 자성의 목소리를 촉구하는 의료전문신문 '청년의사'창간 등 이사장님의 행적을 보면 공공에 대한 관심이 남다른 것 같습니다. 어렸을 적 꿈은 무엇이었습니까.
이왕준: 어린시절에는 별다른 꿈이 없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유복하게 자랐고, 아버지도 의사고 그랬습니다. 타인에 대한 관심은 감성적인 것이었으나, 대학에 가게 되면서 386세대로서 당시 새로운 시야나 가치관을 갖게 되었습니다. 민주화 학생운동으로 잡혀간 감옥 생활 6개월간 옥살이 하면서 고문도 많이 당해보고 고생을 좀 했지요(웃음)

삶의 원형을 형성하는 20대 젊은 시절에 고생을 해 보면서 가치관이 조금은 변한 것 같습니다. 가치관이 정립되었다고 할 수도 있고요. 개인적인 자아 실현을 넘어서 사회적 실현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는 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제가 품는 꿈이 사회적 가치로 증명되는 과정을 거쳐야 성공을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제 이익보다는 공동의 가치를 추구하는 게 훨씬 의미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학생운동을 하면서 그런 것을 더욱 많이 체득하게 되었고, 공공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의무감이라기보다는 흥미로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제 안에 코드화 (체질화)되어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런 일들에 가치를 느끼고, 일이 잘 되면 재미를 느낍니다. 공동의 가치를 실현하는 것을 제가 재미있어 하는 것 같습니다.

IGM: 선, 후배 동기 의사들과 함께 바쁜 레지던트 시절에 의학신문을 창간하셨습니다. '청년의사' 는 어떻게 창간하게 되었나요.
이왕준: 1992년도에 '청년의사'를 창간했죠. 92년은 의과대학을 9년만에 졸업하던 해였습니다. 의대를 졸업하면서 동료, 후배들과 같이 창간을 했지요. 소위 ‘의사면허증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발기인들끼리 십시일반 돈을 모은건데 350명이 5000만원을 모았습니다. 그 중 180명들이 당 해 졸업생이었습니다.

'청년의사' 창간 캐치프레이즈로 '한국 의료의 반성과 희망'을 내걸었습니다. 내부적 강령을 문서화 한 것은 없지만 의료개혁을 위해 한 세대 동안은 이런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신문에 담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의료계에는 반성과 개혁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개혁을 주창하기 전에 의료계 내부의 자성을 먼저 해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내부개혁 없이 밖으로 제도 개혁을 부르짖는 것에 반대했습니다. 당시 ‘반성’이라는 말을 선배의사들은 민감해 하더라구요.

프로페셔널한 집단은 밖으로부터 개혁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건 그 집단에 개혁이 될 수 없습니다. 프로페셔널리즘이 존재하는 집단은 스스로가 개혁의 주체이자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부에서 반성적 개혁을 해야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캐치프레이즈를 가지고 19년 간 걸어왔습니다.

IGM: 의료산업 경쟁력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고, 그 결과가 조직에서 나타났던 것 같습니다. 인천사랑병원 인수 10년 만에 '적자 병원을 5배 흑자 병원으로 전환'시켜 주변을 깜짝 놀라게 하셨는데, 조직을 살렸던 비결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이왕준: 인수 당시 '세광병원'은 1년 동안 문을 닫은 병원이었습니다. 완전히 '제로'에서 시작한 거였습니다. '인천사랑병원'으로 바뀌고 나서 2,3년 만에 흑자 전환 시켰죠. 턴어라운드를 하는 과정에서 계속 혁신하고 확장해서 지금은 지역 거점병원, 중견 병원으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부도상태였던 '인천사랑병원'의 성공 비결이 뭐냐고 많이들 물으시는데 결국 한 가지 방법입니다. 좋은 의료진이 소신껏 일할 수 있도록 하면 되는 것입니다. 좋은 의료시스템을 갖추고 현장의 의사들이 소신껏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만 들어 주면 됩니다. 현재 인천사랑병원은 모든 의사들이 자기 병원처럼 일을 하고 있습니다. 열심히 일한다고 의사들에게 지분을 가지게 하거나 인센티브, 보너스를 주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IGM: 경제적인 동기부여 없이, 고급인력을 적극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비결이 궁금합니다.
이왕준: 경제적인 자극보다 가치적인 부분에서 자극을 받아야 합니다. 의사들에게 소신껏 진료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서로 협력, 협업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주면 됩니다. '인천사랑병원'은 매출 공개를 안하고 실적 공개도 안 합니다. 의사들의 매출이나 실적을 공개하게 되면, 니 환자 내 환자 가르게 되고 쓸데없는 진료를 하게 됩니다.

이러한 경영방식은 제가 개발한 게 아니고, 전세계 유수한 병원들이 이 흐름으로 가고 있습니다. 저는 제 나름대로의 생각을 갖고 행동한 것이었는데, 전 세계 유수한 병원들은 이런 것들을 병원 전면에 내걸고 하고 있더라구요. 고급인력들에게 경제적 보상은 해줘야 하지만, 그것으로만 자극하면 한계가 있습니다. 말에게 계속 (경제적 보상이라는) 당근만 주게 될 때, 당근을 못 주면 말은 결국 설 테니까요.

IGM: 병원경영에 대한 지식이 남다른데, 처음에는 어떻게 변화를 시도하셨습니까.
이왕준: 병원 운영경력이 이제 10년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열정, 악, 독기로 했습니다.(웃음) IMF시절 '인천사랑병원'을 맡으면서 직원들 다 모아놓고 우린 물러설 곳이 없으니 '100일만 버텨보자' 고 했습니다. 1년을 버티면 우린 안 망한다. 의사 3명이 1인실 병실을 빌려 100일 동안 먹고 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100일 지났더니 베드가 다 차서 원무과장이 이제 입원이 안된다고 하더라구요. 집에 가서 자라구요(웃음). 명지병원 와서도 100일 전투를 선포했고 초기 혁신 프로그램들을 가동했습니다.

IGM: 지난 7월 병원계에 ‘중소병원 원장의 대학병원 인수’라는 파란을 불러 일으키며 명지병원의 새 주인이 되었습니다. 명지병원은 어떻게 운영하고 계십니까.
이왕준: 당시 명지병원은 '인천사랑병원'에 비하면 매우 좋은 상황이었습니다. 인적 인프라나 물적 토대가 다 구비되어 있어서 이노베이션만 하면 됩니다. 혁신 프로세스를 어떻게 가동시키고, 빠른 속도로 성과를 가시화하느냐 하는 문제만 남아 있습니다. 취임후 지난 6개월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고, 직원들도 공감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사장으로 와서 3개월 만에 26억 흑자를 내고 손익분기점을 넘겼습니다.

IGM : 위기의 조직을 변화시켜 단기간에 흑자를 낼 수 있었던 경영 방법이 궁금합니다.
이왕준 : 두 가지가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하나는 매출을 늘리고 것이고, 두 번째는 비용을 줄이는 것입니다. 매출은 환자가 떨어지지 않으면 되는 것입니다. 원래 하반기에 환자가 떨어지는데, 그걸 유지했습니다. 환자수가 더 올라가고 있습니다. 의사들이 환자를 열심히 보면, 환자는 늘게 되어있습니다. 의료진이 목적의식을 가지면 환자가 늘어갑니다.

단기적인 이익은 비용을 줄이는 데서 나타납니다. 비용을 줄이는 데 있어 제조업처럼 인건비를 통한 구조조정은 안했습니다. 의료서비스산업에서는 인건비가 비용의 45%를 차지합니다. 줄일 수 없는 고정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의료산업에서 사람을 줄이기 시작하면 망해가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대신 물류비용이나 재료비, 관리비를 줄였습니다. 비용의 25% 정도가 관리비인데 그것을 줄였습니다. 인건비를 줄이지 않고, 사람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도록 했습니다. 서비스업은 그것이 가능합니다. 한 사람, 한 조직, 한 팀이 만들 수 있는 생산성이 3배에서 4배까지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저는 병원운영하면서 절대 사람을 줄이지 않습니다. 생산성을 높이는 방법을 택합니다.

IGM: 취임하는 날 거창한 비전을 선포하셨습니다. “향후 10년 안에 관동의대를 한국의 10대 의과대학으로, 명지병원을 10대 병원으로 키우겠다”는 포부를 밝히셨는데요.
이왕준: 사람들이 10대 병원 약속이 허황되지 않냐고들 하는데 제 생각은 다릅니다. 현재 종합병원 빅5가 1군이구요, 2군은 20~30개입니다. 직원들에게 이 2군들 중에서 일등을 하자고 했습니다. 현재는 의과대학 병원으로 41개 중에 40등입니다. '10등 안에는 못 들어도 11등은 왜 못 하겠는가'하는 생각입니다. 직원들에게 '신종플루 거점병원도 1등 하지 않았는가, 독감치료 1등 못 할거 없지않은가'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IGM: 이왕준 이사장님께서는 '사람을 살리는 직업'에서 '조직을 살리는 직업'으로 업종전환을 하셨는데, 계기가 있었습니까.
이왕준: IMF때 다 망한 병원이 아니었으면 병원을 인수할 기회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 때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지 않습니까. 이번에도 경제위기가 와서 (경제가) 어렵지 않았으면 이런 기회를 갖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제가 병든 환자는 다 못 고쳐도 병든 병원은 고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IGM: 병원 운영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이 있으시다면요.
이왕준: 병원 운영하면서 사람들이 가장 어려워 하는 것이 의료진이 다른 어느 직업군보다 독립적, 개별적이고 쉽게 통제 조정이 안된느 직군이라는 것입니다. 의료진들은 다른 일반 회사 경영과는 다릅니다. 의사 자체가 걸어 다니는 생산 수단이고, 그 퍼포먼스는 누구도 기계적으로 통제가 불가능한 요소입니다. 자기가 신나면 누구보다 열심히 할 수 있는 것이고, 반대이면 끝없이 게을러지거나 방만할 수 있는 거구요. 이런 인력들을 다루는 것은 대단히 행동과학적인 동기부여를 해야 합니다. 이런 부분이 저에게도 무척이나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인재 구성이 전문가들이기 때문에 시스템만으로 통제할 수 없는 복잡 미묘한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는 워낙 다양한 직군과 부서여서 이들간의 갈등을 융합하고 코디네이션 해주는 것이 어렵습니다. 타협점이 아니라 가장 효율적인 결과를 내야 하는 것이 어렵죠. 다양한 이해관계가 존재합니다. 세 번째는 노사관계인데요, 명지병원은 특별히 노사 갈등이 많았는데 선진적인 노사관계를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IGM: 이사장님께서 생각하는 리더십은 어떤 것입니까.
이왕준: 리더십이라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저는 3 가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첫째, 솔선수범으로 본인이 모범을 보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 둘째, 사람에 대한 이해와 통찰력이 중요하다는 것. 특히 서비스 산업은 모든 것을 기계가 아닌 사람이 하니까 사람에 대한 이해가 제일 중요합니다. 사람이 얼마나 열심히 제대로 하느냐가 관건입니다. 셋째는 커뮤니케이션입니다. 위, 아래가 얼마나 커뮤니케이션을 잘 하고 서로 설득력과 통솔력을 갖느냐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설득력은 내면으로부터 나오는 것 같습니다. 절박하고 필요하다는 내면의 에너지가 바깥에서도 보이는 것 아닐까요. 정말 내 마음, 내 머리 속에서부터 나오는 것 말입니다. 내면으로부터의 진정성이 다른 사람을 움직이는 동력이 됩니다.

IGM: 지금 꾸고 있는 꿈은 어떤 것입니까.
이왕준: 거창하게 10년 후에 대해 이야기 할 수는 없고, 이런 인터뷰를 할 자격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지난 10년 동안 병원경영에 대해 어느 정도 원형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앞으로 그 원형이 작동이 되어서 (의료경영이나 체계가) 보편적인 것으로 확대되면 한국 의료산업 전체 시스템에 적용될 수 있도록 발전시켰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만든 성공 사례가 단지 우리 병원 몇 개에만 국한되지 않고, 전체적인 의료계에 보편적인 작동 원리로 확산되면 많은 사람들이 더 큰 가치를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개인이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없어도 계속 작동될 수 있는 의료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제가 지금 꾸고 있는 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