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익진 대표(오른쪽)가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국수의 고장 대구에서 80년이 넘게 국수만을 전문적으로 생산해온 터줏대감이 있다. ㈜풍국면은 90년대 초반, 국수업계가 위기를 맞았을 때 가업승계로 돌파구를 찾았다.

2대째 경영자로 회사를 맡고 있는 최익진 대표는 취임 이후 연매출을 5배 이상 끌어올렸다. 국수의 품질 개선을 위한 끊임없는 혁신의지, 원가절감 노력으로 국수업계를 대표하는 장수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증권사 엘리트서 국수 CEO로
㈜풍국면은 1933년에 창업해 국수명가로 인정받으며 성장을 거듭해왔다. 80년대 중후반까지만 해도 국수업계는 소주업계가 그랬듯 각 지역을 대표하는 회사들이 있었다. 경북에는 목포국수, 충청도에는 영화국수가 유명했다. 90년대에 접어들면서 터줏대감 같았던 국수회사들이 하나둘씩 무너지면서 공장을 겨우 유지하던 회사들은 사느냐, 죽느냐의 기로에 서게 된다.

최익진 대표는 국수업계에게 풍전등화와 같던 1993년, 창업주인 아버지 고 최정수 회장에게 가업을 넘겨받았다. 당시 미국 MBA를 마친 뒤 국내 굴지의 증권사 국제부에서 일하던 최 대표에게 쉽지 않은 결심이었다.

하지만 한평생 제조업에 투신해온 아버지와 공장 일에만 매달렸던 직원들이 하나둘씩 퇴사하는 것을 차마 두고 볼 수 없었다. 최 대표는 부채가 잠식한 회사를 살려내 회사 식구들을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결심을 했다. 업무를 파악한 뒤 가장 먼저 1톤 트럭을 몰고 시장으로 달려갔다. 납품 계약을 따내기 위해 매일 삼립빵집과 삼화간장 대리점에 찾아갔다.

유통 기간이 길면서 시장을 주도하는 대리점과 연계시키면 국수 판매량을 늘릴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버틴 2~3년 동안 풍국면의 연매출은 이전과 대비해 30% 신장한 25~26억 원을 기록했다. 선방하기는 했지만 업계 선두로 치고 나가기에는 여전히 부족한 게 많았다.

풍국면에게도 마침내 반등의 기회가 찾아왔다. 1995년 서울 창동에 이마트가 생기면서 풍국면을 납품할 기회를 얻은 것이다. 풍국면은 대형마트의 성장과 함께 시장 점유율과 브랜드 인지도를 동시에 높이며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대형마트에서 독점계약을 요구하면서 판로와 매출이 줄어든 상황에서 대기업 식품회사를 공략했다. 자사 상표를 고집하지 않고 대기업 하청에 뛰어들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제일제당과 샘표식품에 제품을 납품하면서 매출을 유지할 수 있었다. 현재까지도 풍국면은 CJ샘표식품과 대한제분, 이마트, 롯데마트 등 여러 대기업과 거래를 하고 있으며, 에버랜드와 아워홈처럼 케이터링 업체에도 물건을 납품하고 있다.

“그때 만약 풍국면의 상호만은 고집하고 대기업과 손을 잡지 않았다면 오늘날의 풍국면은 존재하지 않았을 거예요. 갑을관계라고 생각하면 답이 나오지 않아요. 대기업과 공생하며 혜택은 최대한 누리고 위기를 기회로 볼 줄 아는 능력이 중소기업을 키우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해요.”

풍국면의 선호는 높아져가면서 시장 수요에 공급량을 맞추지 못하는 문제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최 대표는 자동화 생산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과감하게 투자에 나섰다. 코카콜라에서 기계를 다루던 엔지니어를 영입, 국수 자동화 생산시스템을 개발하기로 했다.

2002년 공장 설립 계획을 구체화한 이후 4년에 걸쳐서 총 35억원을 투자해 생산화 라인을 개설하게 된다. 2003년도에 도입한 자동화 기계는 기존의 고정식 건조방법에서 자동이행 건조방식으로 전환하는 계기였다. 2008년에는 진공반죽기를 도입해 풍국면의 도약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생산현장 혁신으로 도약
진공 반죽은 일반 반죽과 달리 조직이 규칙적이고 식감이 좋아서 쫄깃한 면발을 만들기에 적합했다. 스파게티나 냉면은 제면 과정에서 화학적 변화로 조직의 성분을 잃지만, 진공 반죽기는 재건조를 해서 면을 다시 뽑더라도 물리적 변화만 있을 뿐, 화학적 변화 없이 국수의 식감이 그대로 유지돼 제품의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다.

“쫄깃한 식감은 유지하면서 한입에 먹기 좋은 국수니까 당연히 잘 팔릴 수밖에 없죠. 당시 계산상으로는 4~5% 마진을 붙이면 수익률이 맞았지만 7~8%를 붙였어요. 가공률이 좋고 풍국면에서 유통까지 담당했기 때문에 단가를 많이 낮출 수 있었죠. 팔릴 거라는 자신이 있었어요.”

현재 풍국면은 매출 19억원, 부재가 17억원인 회사에서 100억원대 자산과 48억원의 현금 보유량을 가진 기업으로 성장했다. 특히 가업을 이어받기 전과 후의 연간 매출을 비교해보면 가업승계 전인 93년 19억원이었던 것이 2013년에는 98억원으로 약 5배 이상 늘어났다.

최 대표는 가업승계의 장점으로 ‘기업에 대한 애착이 남다른 점’을 꼽았다. 자신이 아닌 전문경영인이 풍국면을 맡았다면 트럭을 몰고 시장영업을 직접 다닐 수 있었겠느냐고 반문했다. 엘리트 코스를 밟은 화이트칼라 사장이라도, 가업을 물려받은 회사를 위해서라면 점퍼를 입고 현장으로 달려가 막일을 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최 대표는 가업승계를 잘 하는 것이 국가경제 발전에도 보탬이 된다고 강조한다.
“가업승계는 사명감이 없으면 회사의 명맥을 잇지 못합니다. 기업인 자녀들이 회사를 물려받지 않으려는 현상이 비단 자부심을 갖기 어려워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에 오래된 기업을 존중하고 대를 이어 사업하는 기업을 존중하는 문화가 뿌리내려야 합니다.”